‘금융제국’으로 불리며 최근 10년간 전 세계 금융업계를 호령해 온 씨티그룹이 휘청거리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여파가 컸지만, 최근 우리 금융계가 지향하고 있는 겸업화와 대형화의 부작용이라는 해석도 만만치 않다.
■ 자회사 매각에 대량 감원까지
씨티그룹은 이 달 7일 카드부문 자회사인 다이너스 클럽 인터내셔널을 지난해 모건스탠리에서 독립한 카드사 디스커버 파이낸셜 서비스에 1억6,000만달러에 매각했다. 다이너스는 세계 185개국 800만 가맹점에 연평균 300억달러의 결제 규모를 가진 씨티그룹의 글로벌 카드 경쟁력을 떠받쳐 온 회사.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씨티그룹이 구조조정을 위해 다이너스를 매각했으며, 이 과정에서 전 세계 2만5,000명의 직원이 해고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또 “씨티그룹이 재무상태 개선을 위해 120억달러 규모의 차입여신을 10% 할인된 가격에 사모펀드에 매각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씨티그룹의 굴욕은 이미 서브프라임 사태가 불거진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됐다. 지난해에만 259억달러의 부실자산을 상각했고, 121억달러의 순손실을 봤다. 급한 불을 끄고자 중동의 국부펀드 등에서 지금까지 300억달러를 투자 받았지만, 여전히 자회사를 팔아야 할 정도로 실탄이 부족한 상태다.
한때 50달러를 훌쩍 넘던 주가는 1년 만에 반토막이 났고, 2조2,000억달러에 이르던 자산도 연내 1조9,000억달러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전 세계 은행 중 부동의 1위였던 시가총액도 어느덧 뱅크오브아메리카, JP 모건체이스에 밀려 3위로 떨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엔 존 리드 전 회장까지 나서 “씨티그룹의 합병은 실수였다”고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 아 옛날이여!
씨티그룹의 출발은 화려했다. 시장이 법을 선도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실제 1998년 상업은행인 씨티코프와 투자은행인 트래블러스가 합병해 씨티그룹이 탄생하자 대공황 시절부터 상업은행의 투자은행 소유를 제한해 오던 ‘글래스-스티걸법’은 유명무실해졌다. 결국 이듬해 겸업을 허용하게 법이 바뀌었는데 금융계에선 “낡은 규제를 날려버린 시장의 승리”라는 환호까지 할 정도였다.
이후 씨티그룹은 공격적인 인수ㆍ합병(M&A)에 나서 2000년에는 한해 130억달러라는 경이적인 순이익을 냈다. 전 세계 톱 클래스의 은행, 보험, 증권 등을 두루 갖춘 ‘씨티판 원스톱 금융백화점’이 완성되자 세계 금융사들은 저마다 ‘씨티처럼 되기’에 열을 올렸다.
■ 왜 기울었나
씨티그룹은 합병 직후 ‘너무 커서 망하기 어렵다’(too big to fail)는 평가까지 들었다. 씨티가 망하면 시장이 무너질 정도로 덩치가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의 재벌들이 들었던 ‘대마불사’(大馬不死)와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엄청난 덩치는 동시에 약점이기도 했다. 씨티그룹은 어느 순간 ‘너무 커서 관리가 안 되는’는 허점을 노출하기 시작했다. 2002년 엔론 사태 당시 AT&T의 투자등급을 편법 상향해준 혐의로 거액의 과징금을 무는가 하면, 2004년에는 일본에서 주가조작 자금을 대출해줬다는 의혹으로 그룹 회장이 직접 사과에 나서야 했다.
한때 덩치 키우기에 환호했던 주주들은 “비용만 잡아먹는 공룡이 됐다”며 점차 비판으로 돌아섰다. 서브프라임의 전조가 깔리던 2007년 봄 골드만삭스가 부실위험이 있는 자산을 내다팔 때도 씨티그룹 경영진은 모기지증권 투자를 늘렸고 결국 이것이 결정타가 됐다.
M&A에 뒤따르는 계열사 간 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한 것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국내 씨티그룹 계열사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안정을 중시하는 상업은행과 공격적인 성향의 투자은행 문화 사이의 충돌이 오늘날 비극의 씨앗”이라고 분석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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