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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투표율 46%에서 읽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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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투표율 46%에서 읽을 것

입력
2008.04.10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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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투표율 46%…아찔하다. 이번 총선 결과를 보도하는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 저명 신문들의 논평은 한결같다. “(이번 총선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힘을 받았다”는 것. 그러나 정작 그 외신을 읽는 한국 독자들의 눈을 찌르는 대목은 그 다음 구절 "투표율 46%!"라는 구절이다. 두 저명지 말고도 월스트리트 저널, 크리스쳔 사이언스 모니터등 미국의 전국지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보도하는 대목도 바로 이 투표율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가 과연 한국 사회를 구할 수 있는가?

영화 <닥터 지바고> 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애인 라라를 찾아 눈보라 속에 사경을 헤매는 주인공 지바고의 귀에 주민들의 함성이 들려온다. 군인들에게 쫓기는 주민들이 질러대는 공포의 절규 소리다. 주민 가운데 노파 하나가 지바고를 향해 “솔저, 솔저!(Soldiers, Soldiers!)”를 외쳐댄다. 군인들이 지금 한창 마을에서 노략질을 해대니 제발 좀 살려달라는 탄원이다.

지바고가 되묻는다. “White? or Red?(백군이오? 아니면 적군이오?)” 여기서 백군(白軍)은 당시 제정(帝政) 러시아의 로마노프 황제를 따르는 정부군을 말한다. 적군(赤軍)은 제정의 폭정에 반기를 든 러시아 혁명군이다. 지바고는 지금 살육과 노략질을 해대는 군인들이 백군소속인지 적군소속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노파는 그러나 “솔저, 솔저!”만을 반복할 뿐이다.

그렇다. 지금 현재 노파가 무서워하는 것은 군인 그 자체일 뿐 백군 소행이냐 적군 소행이냐는 관심권 밖인데도 먹물이 든 지바고는 엉뚱하게도 백이냐 적이냐만을 따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 정치가 바로 그렇다. 여가 옳으냐 야가 옳으냐는 여야 캠프의 관심사는 될망정, 또 의사 지바고처럼 뭔가를 배웠다는 지식층의 편 가르기에 불과할 뿐 정작 민초들의 관심에서는 훌쩍 벗어나 있다는 말이다.

민초들은 정치 그 자체가 싫은 것이다. 노략질해대는 군인 그 자체가 싫듯이. 그 결과가 이번 총선에서 46%로 나타난 것이다. 텔레비전 연속극의 제목 같은 결과다. “정치가 뭐길래!”

정치란 영화 <닥터 지바고> 속에 등장하는 노파의 절규-그 증오였음을 터득했어야 옳았다고 자탄한다. 이 증오의 해소책을 찾지 않는 한, 분명히 말 할 수 있는 건,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도 5년 후면 전임 대통령 누구누구와 똑같은 꼴을 당하고 만다.

뉴스위크 기자가 어느 날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찾아와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중국을 미워하지 않는가? 동족들이 죽어가는데도 중국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말인가?”

이에 대해 달라이 라마는 “그렇다. 나는 중국을 미워하지 않는다. 매일 밤 기도를 통해 그들에게 자비를 베푼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들과의 대화다”라고 대답했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깊은 영성(靈性)을 지녔다는 이명박 대통령이 꼭 들어야 할 말같기에 굳이 인용한 것이다. 야당을 위해, 소외층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쫓아낸 한나라당 동료들을 위해 우선 기도하라고-. 그게 바로 정치이다. 우리가 의회 민주주의와 접목된 지 올해로 정확히 60년, 이렇게 정치 환갑을 맞아서야 그 정치가 바로 증오의 해소임을 깨우친 것만 해도 늦지 않은 것이다. 이번 총선의 의미이기도 하다.

김승웅 전 한국일보 파리특파원 swkim43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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