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부터 시작된 13일간의 선거운동을 되짚어보면 4ㆍ9 총선은 ‘3무(無)ㆍ3유(有)’ 선거라 할 수 있다. 주적(主敵)이 불분명했고 큰 이슈도 없었으며 바람도 없었다. 대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만 부각됐고 지역주의가 슬그머니 되살아났으며 부동층이 두드러졌다.
선거양상은 전례가 없는 희한한 모양새였다.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에 남고 친박 낙천자들은 탈당해 박 전 대표를 간판으로 내세웠다. 박 전 대표는 당 지원유세에 참여하지 않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당 밖의 친박 출마자들을 도왔다. 일부 ‘박사모’회원들이 한나라당 공천을 주도하거나 친박계에서 친이명박계로 넘어간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다른 당 후보를 지지하는 일도 벌어졌다.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분신인 박지원 전 비서실장과 아들인 김홍업 의원이 호남에서 무소속으로 출마, 민주당과 전선을 형성했다. 비리전력자 공천배제 기준으로 낙천된 이상수 전 의원의 개소식에는 김원기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 등이 참석해 힘을 실어주고 이를 민주당 후보가 항의하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반면 각 당의 비전과 대안제시는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안정론 대 견제론의 구호만 나부꼈을 뿐 야권이 쟁점화를 시도했던 한반도 대운하 논쟁은 여당의 무대응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다른 쟁점들도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그래서 바람 없는 선거가 됐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과 열린우리당 200석 전망, 난파선 한나라당에 박근혜 선장 출현, 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노인폄하 발언, 한나라당 상승세 수도권 북상, 정 의장의 비례대표 후보 사퇴 등 숨막히는 파노라마가 이어진 17대 총선에 비하면 흥행은 별로였다.
이슈가 실종되다 보니 ‘인물 마케팅’이나 지역주의에 호소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사상 최초로 정당명에 특정 정치인의 이름을 내건 친박연대. 그들의 광고는 ‘박근혜를 5년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구호를 내걸었다. 정책이나 비전보다는 박 전 대표가 선거목표라는 노골적인 선거운동을 벌인 것이다. 통합민주당의 호남 공천에 탈락한 인사들이 ‘DJ 마케팅’을 벌이고, 정동영 후보가 서울에 출마하자 한나라당이 정몽준 의원으로 맞불을 놓은 것도 인물마케팅의 변형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영ㆍ호남의 압승을 당연시하고, 자유선진당이 충청에 올인하면서 지역주의도 다시 기승을 벌였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지난달 28일 대구 서문시장 유세에서 “TK(대구ㆍ경북)는 YS정권부터 따지면 10년이 아니라 15년간 핍박을 받았다. 한나라당을 뽑으면 피해본 것 다 회복한다”고 지역주의를 부추겼다.
이 같은 흐름은 선거 무관심과 냉소를 부채질했고, 이에 식상한 유권자들이 대거 부동층으로 몰리면서 사상 최저 투표율의 비관적 전망까지 낳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에 따르면 7일까지도 약 30%가 부동층인 것으로 조사됐다.
박석원 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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