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또 ‘실세 부재 및 불용론’을 강조했다. 지난 주 청와대 비서관들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그는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모 비서관 등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밖에서 이들이 실세라고 하는 모양인데, 청와대엔 실세가 없다. 누구든 열심히 뛰어주는 사람이 고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2월 중순 국정운영 워크숍에서 이 얘기를 공개적으로 처음 꺼냈다. “(나를) 오래 알던 사람을 실세로 착각할까 봐 분명히 말하는데, 최근에 만난 사람이 나의 최신판을 더욱 잘 이해할 것이다.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저지르는 과오는 ‘이명박이 늘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당시 그는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내정된 김백준씨를 지목하며 “70년대부터 나를 아는데 (지금은) 되레 잘 모른다”고도 했다. 현대건설 사장ㆍ회장 국회의원 서울시장까지의 이력을 쫓아온 잣대로 오늘의 자신을 이해하면 오산이라는 경고다.
일·성과 중심의 MB 용병술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 주재한 청와대 비서관 회의에서도 “나와 오래 알던 사람들이 더 (처신을) 조심해야 하고, (다른 비서관들은) 이들의 눈치를 보는 일이 전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 중심이지 사람 중심이 아니며, 친이냐 불친이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CEO 유전자를 가진 자신의 리더십은 철저하게 일과 성과를 중시하기 때문에, ‘영원한’ 가신이나 측근은 존재할 수 없고 계보도 만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토목공사를 수주하고 설계하고 건설하고 운영하는 사람이 각각 다르듯, 실세가 있다고 해도 국정 운영의 단계와 기능에 따라 매번 사람은 바뀐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새 정부의 경제팀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일전에 이 대통령은 6개월 혹은 1년 단위로 장관과 청와대수석을 평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자리에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나를 잘 아는 것 같아도 잘 모른다. 오히려 김중수 경제수석이 더 정확히 알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서, 경제 살리기의 모든 권한과 책임을 위임 받았다고 자부해온 강 장관으로선 꽤나 섭섭했을 말이다.
더구나 기획재정부가 조직 통폐합에 따른 유휴인력을 갖가지 명목의 TF로 편법 운영해온 것이 밝혀져 그는 면전에서 ‘모피아식 온정주의’라는 대통령의 질책을 받았고, 재정부의 늑장정책이 도마에 오른 관광경쟁력 회의에서는 “(강 장관이) 연말까지 장관을 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썰렁한 농담의 대상이 됐다. 강 장관이 열심히 ‘7% 성장능력을 갖춘 경제’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이 대통령이 돌연 “성장과 일자리보다 물가 안정이 더욱 중요하다”고 김을 빼는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강 장관은 대통령과 생각이 같고 두 사람의 신뢰와 존중이 두터움을 의심하지 않는다. 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그를 ‘수석 경제부처의 수장’ 이상의 권위를 인정하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최근 강 장관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사이에 오고 간 금리 및 환율정책 신경전, 또 산업은행 민영화를 둘러싼 강 장관과 전광우 금융위원장의 메가뱅크 득실론 공방은 이 같은 역학관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다.
내각에도 ‘실세’가 없으며, 대통령의 변화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면 누구든지 중도 탈락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도처에 널려 있다. 권력화한 관치금융, 책상머리의 자원정책, 구태의연한 농정 등 매서운 추궁을 받지 않은 부처가 없으니 공직사회가 긴장할 만도 하다. 더구나 어느 지역의 전봇대를 지적하면 공무원들은 그 전봇대만 뽑고, 정부가 투자를 다그치면 기업들은 가공의 숫자를 들이댄다는 것도 이 대통령은 ‘을의 경험’을 통해 잘 안다.
팀워크 없으면 눈치·충성만
그러나 기업에선 몰라도, 국가에선 대통령만 실세로 남아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가르치고 지시해서는 일이 되지 않는 법이다. 공무원들의 일 방식이 답답하다고, 매사 대통령이 팔소매를 걷어붙이면 공직사회엔 눈치와 충성만 활개치게 된다. 내일 총선이 끝나면 이 대통령은 자신의 리더십을 되짚어 보고 인적 진용 운용의 액션 플랜을 다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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