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발레의 전설로 불리는 러시아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81). 1964년부터 1995년까지 볼쇼이극장 예술감독을 맡아 세계 정상 볼쇼이 발레단의 신화를 만든 주인공이다.
그리가로비치는 국립발레단이 올리는 자신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 준비를 위해 한국에 머물던 2월, 그의 뮤즈이자 볼쇼이 최고 발레리나 중 하나였던 나탈리아 베스메르트노바를 잃었다. 부인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비행기를 탔지만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로미오와>
그리고 지난 6일, 그리가로비치는 다시 한국에 왔다. 그의 줄리엣은 떠났지만, 무대에 새로운 줄리엣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국립발레단이 이번 공연에 '베스메르트노바 추모 헌정 공연'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것을 본 그는 "국립발레단이 아내를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카랑카랑했지만, 눈빛은 쓸쓸해보였다.
베스메르트노바는 79년 <로미오와 줄리엣> 초연 때 줄리엣이었다. " <로미오와 줄리엣> 은 아내를 위해 안무한 작품입니다. 마음이 많이 아프군요." 그는 이후 아내 이야기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로미오와> 로미오와>
이번에 줄리엣 역을 맡은 김주원과 김지영은 2001년 <스파르타쿠스> 공연 때 직접 베스메르트노바의 지도를 받은 적이 있는 무용수들이다. 스파르타쿠스>
그리가로비치는 이 둘에 대해 "뛰어난 재능을 가진 무용수들과 작업하는 것은 항상 기쁜 일"이라고 했다. 2006년 김주원이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여성무용수상을 받을 때 심사위원장으로서 수상에 힘을 실어줬던 그는 "선정 과정은 비밀이지만, 분명한 것은 주원은 내가 아니었어도 그 상을 받을 만큼 훌륭한 발레리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인 김지영에 대해서는 "여러 안무가의 스타일을 쉽게 습득하는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둘 중 누가 더 줄리엣에 어울리냐는 질문에는 "관객들이 결정할 것"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셰익스피어가 쓴 비극적 연인의 이야기는 수없이 반복, 재생산돼왔다. 발레만 해도 80여 개가 된다. 그리가로비치의 <로미오와 줄리엣> 은 남성 무용수들의 화려한 춤이 사랑 이야기 못지않게 강렬하며, 줄리엣을 앳된 소녀가 아닌 성숙한 여인으로 그린다. 로미오와>
그는 "이 이야기는 인류와 함께 영원히 있을 것이며, 프로코피예프의 위대한 음악이 있기에 발레로서도 계속 살아남을 것"이라면서 "이 작품을 통해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증오하는가를 무용 언어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2000년부터 국립발레단과 꾸준히 작업해온 그리가로비치는 국립발레단 산하 발레학교가 없는 것은 한국 발레의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발레의 힘 역시 발레 학교에서 나오는 것이며, 세계적으로 남성 무용수가 줄어드는 추세이기에 안정적으로 무용수를 키우고 배출할 수 있는 발레 학교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많은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이냐는 마지막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아직 안무하지 않은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숨돌릴 새도 없이 바로 옷을 갈아입은 백발의 거장은 무용수들을 지도하기 위해 연습실로 향했다.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 에는 그의 슬픔과 베르메르트노바의 그림자가 어떻게 투영될까. 공연은 16~19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김주원과 김현웅(16, 18일), 김지영과 정주영(17, 19일)이 타이틀롤을 연기한다. 공연 문의 (02) 587-6181 로미오와>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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