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티 김은 욕심이 아주 많은 가수다.
욕심이란 좋은 욕심과 나쁜 욕심이 있을 것이다.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싶다. 책을 많이 읽고 싶다. 사회 봉사를 많이 많이 하고 싶다” 같은 것은 좋은 욕심 일 것이고, 지나치게 돈을 밝힌다거나, 명예욕에 얽어 매인다거나 하는 것은 나쁜 욕심일 것인데, 패티 김은 좋은 욕심을 가지고 있는 가수다. 왜냐하면 노래에 대한 욕심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빛과 그림자’라는 노래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다. 그녀의 전 남편이며 작곡가인 길옥윤 선생이 이 노래를 작곡 했을 때 일이다. 길옥윤 선생이 연락이 와서 무교동 어느 맥주 집에서 만났다. “홍택이, 패티는 참 좋은 가수야. 그런데 노래 욕심이 너무 많아서 탈이야”라고 말했다. “왜요? 무슨 일이 있어요, 형님?” 내가 물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사정은 이랬다.
빛과 그림자라는 노래를 만들 때 가수 최희준에게 주려고 생각을 했고, 또 최희준에게 약속까지 한 상태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노래를 듣고 나서 패티 김이 “이 노래는 내가 불러야 하겠다”고 말한 모양이다. “안돼. 패티가 양보 해. 희준이 한테 준다고 이미 약속 까지 했단 말이야.” 사실, 마음에 드는 노래가 있을 때 선뜻 양보하는 가수는 그리 흔하지는 않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미 약속 까지 한 상태라는데.
결국, 빛과 그림자는 최희준에게로 갔고, 그가 레코드 취입을 했다. “사랑은 나의 행복, 사랑은 나의 불행, 사랑하는 내 마음은 빛과 그리고 그림자 (후략).” 이렇게 시작 하는 아주 감성을 자극하는 노래다. 좋은 노래에 대한 욕심이 많은 패티로서는 속이 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얼마 후에 그녀도 이 노래를 취입하게 되었다. 같은 노래라고 해도 가수가 다르고, 더구나 여자 가수이기 때문에 그 느낌은 각각 달랐다.
패티 김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면 길옥윤 선생이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두 사람이 결혼 생활을 한 것은 7년 밖에 안 되지만, 그 7년 동안에 만들어진 주옥 같은 노래들과 사랑 이야기는 끝이 없다. 그리고 이 7년 동안은 패티 김이라는 가수가 톱 클래스의 자리를 확고하게 하는 기간이었다. 사랑과 미움과 노래와 우정, 모든 것들이 이 7년 동안에 이루어 지게 된다. 그들의 나이도 한창이었고, 창작 활동이나, 노래의 기량도 풍부 할 때였다. 이 두 사람 사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는데 그는 길옥윤과 패티 김을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한 김영순 선생이다.
나는 김영순 선생을 1962년에 잠깐 만난다. 그리고 다시 만난 것이 64년이다. 서울 원효로에 화양이란 사무실을 가지고 있었다. 화양이란 한국연예흥행주식회사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이곳은 미군 부대에 쇼단을 공급하는 곳이다. 원래 김영순은 트럼펫 연주자이고 ‘단장의 미아리 고개’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 이해연씨의 남편이며, 아주 훗날 연안부두라는 노래를 부른 김 트리오의 아버지이다.
1959년에 패티 김은 이 김영순씨에게 픽업되어 미군 부대에서 가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김혜자라는 본명을 쓰는 것보다 미국 이름이 있어야 좋을거라는 생각에 린다 김이라고 부르게 되는데 나중에 패티 페이지를 좋아해서 패티 김이라고 이름을 바꾸게 된다. 그녀의 이름을 영어로 Patty Kim이라고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 된 것이다. Patti Kim이 맞다. 왜냐하면 패티 페이지 (Patti Page)를 좋아해서 지은 이름이니까 패티 페이지와 영어 스펠링이 같을 수밖에.
그런데 여기서 재미 있는 사실이 있다. 패티 페이지가 1927년생 이니까, 같은 해에 태어난 길옥윤씨와 동갑이라는 사실이다. 그녀가 존경 하는 가수와 그녀가 사랑해서 결혼한 남편이 우연히 동갑이라는 것은 매우 운명적이지 않은가?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1965년인가. 그녀가 해외 공연을 하던 중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일시 귀국을 했을 때였다. 김포공항에서 동아방송으로 곧장 오게 되었고, 나는 신문기자를 하면서 동아방송에 프로그램을 하나 맡아서 출연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나하고 인터뷰를 했다. 그 후로도 자주 만나게 되었고 주간한국에 인터뷰 기사를 싣기도 했다. 어느 날, 앞에 말한 김영순씨가 연락이 왔다. 저녁 식사를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길옥윤, 패티 김, 그리고 김영순씨와 나는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이것이 길옥윤과 패티 김의 운명을 바꾼 자리가 되었다.
물론 그 두 사람은 그 전부터 아는 사이었고, 일본에서도 같이 만나곤 했지만, 이날 저녁은 아주 특별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반도호텔 (지금의 롯데호텔) 옆에 있는 아사원이라는 중국 음식점에서 저녁 식사하?자리에서 김영순씨가 “두 사람이 아주 잘 어울리는데, 정기자는 어찌 생각 하시오”하고 말을 꺼냈다. 나는 대뜸 “기가 막힐 정도군요. 두 분 다 싱글 이신데 잘 해 보시지오.”라고 말 했다. 어찌 보면 서로가 약간은 마음을 두고 있었던 것을 도와 준 셈이라고나 할까. 울고 싶은 사람 뺨 때린 것이라고나 할까. 이런 자리가 있은 후에 두 사람은 자주 만나게 되었다. 나도 자주 동행을 했다. 이 때 자주 만난 사람들이 최희준, 박형준, 위키리, 유주용 등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좋아했고 사랑을 쌓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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