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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편의 대표작으로 본 '한국형 칙릿'의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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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편의 대표작으로 본 '한국형 칙릿'의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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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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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성(chick)과 문학(literature)의 합성어 ‘칙릿(chick-lit)’이 국내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재작년. 그해 5월 소설로 출간되고 10월 영화로 소개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의 인기가 결정적 계기였다. 미국 작가 로렌 와이스버거(31)가 2003년 발표한 이 소설은 미국 유력 패션지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의 보조자로 일했던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이 작품을 이루는 요소인 ▦20ㆍ30대 여성 주인공 ▦고급ㆍ특이한 직업 세계 ▦연애ㆍ취향ㆍ화법 등 젊은 세대 풍속 등은 고스란히 국내에서 칙릿을 규정하는 잣대가 됐다.

20ㆍ30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들엔 으레 ‘칙릿’이란 꼬리표가 붙는 요즘이다. 인기 장르의 후광을 입을 순 있지만 작품의 특성이 가려질 수 있어 해당 작가에겐 양날의 칼이다. 2006~2008년 출간돼 칙릿으로 분류됐던 작품 중 대표적인 6종을 골라 차별점을 짚어봤다. ‘한국형 칙릿’의 스펙트럼을 살피는 작업이기도 하다.

◆정통형 칙릿 - 낭만적 연애담·미스터리 가미

31세 패션지 여기자 ‘이서정’을 주인공 삼은 백영옥(34)씨의 <스타일> 은 칙릿의 기본 법칙에 충실하다. <하퍼스 바자> 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작가는 유행의 첨단을 이끄는 패션잡지 제작자들의 세계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여기에 주인공이 7년 전 맞선 자리에서 악연을 맺었던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낭만적 연애담과, 미지의 요리평론가 ‘닥터 레스토랑’의 정체를 추적하는 미스터리적 요소를 가미해 잘빠진 대중소설을 만들어냈다.

◆하드보일드 칙릿 - 한 펀드매니저의 욕망 엿보기

22년간 증권맨으로 근무했던 우영창(52)씨는 <하늘다리> 를 통해 31세 여성 펀드매니저 ‘맹소해’의 사회적ㆍ성적 욕망을 강렬하게 그렸다. 금융 경제의 최일선인 증권계의 생태가 손에 잡힐 듯 묘사됐다는 점은 칙릿의 요건을 충족하지만, 풍속보다 자본주의 및 인간 심층에 놓인 욕망을 들추는 데 주력한다는 점에서 좀 더 진중한 느낌을 준다. 힘 있고 함축적으로 쓰여진 문장이 하드보일드한 아우라를 더한다.

◆스놉(snobㆍ속물) 칙릿 - "연애-결혼 사이에서 저울질"

정이현(36)씨의 <달콤한 나의 도시> 의 주인공 ‘오은수’(31세ㆍ편집대행회사 대리)는 하룻밤 잠자리로 사귀게 된 연하남에게 끌리면서도, 소개로 만난 조건 좋은 남자에게 구혼한다. 연애에서 결혼을 떼어 자기 잇속과 철저히 연결짓는 은수는 분명 속물이다. 하지만 그 스노비즘이 불안한 사회에서 제 입지를 지키려는 여성들의 안간힘임을 보여줌으로써 이 소설은 칙릿 계보에서 특이한 위치를 점한다.

◆토종 칙릿 - ‘88만원 세대’의 꿈터… 도서관

서유미(33)씨의 <쿨하게 한걸음> 속 주요 무대는 33세 주인공 ‘연수’의 가족과 대학동창 모임, 동네 도서관이다. 애인과 헤어지고 직장마저 쫓겨나듯 그만둔 연수는 궁상맞은 가족(이란 현실)과 자기 계발에 힘쓰는 동창들(이란 이상)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한다. 결국 그녀가 향하는 곳은 ‘88만원 세대’의 도피처이자 꿈터인 도서관. 화려하진 않지만 핍진한, 한국형 칙릿의 탄생이다.

◆발칙한 칙릿 - 경쾌한 터치로 그린 ‘性풍속도’

이홍(30)씨의 <걸프렌즈> 는 칙릿의 3박자를 갖추면서도 풍속, 특히 성(性) 풍속에 있어 과감한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이다. 29세 회사원 ‘한송이’를 비롯한 세 명의 여자가 한 남자를 ‘공유’하고, 나아가 ‘걸프렌즈 클럽’을 결성해 우정의 연대를 맺는다는 것이 내용의 골자. 동시대 문화에 바탕하면서도 거기에 잠복된 ‘시대 정신’을 예민하게 포착, 재기발랄하고 경쾌한 터치로 풀어냈다.

◆별나라 칙릿 - 요리에 빗대 쓴 ‘연애 지침서’

박주영(37)씨의 <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 는 홈 데코레이션 강사인 20대 후반 ‘서나영’과 주변 친구들의 연애ㆍ결혼(관)을 요리에 빗대 풀어나간다. 이 소설은 시간적 배경을 특정할 수 있는 디테일이 없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풍속소설이 아닌, 시대와 무관하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을 쓰려 했다”는 작가의 의도에 따른 것이다. ‘지금, 여기’의 연애 풍속도가 아닌, 요리책처럼 언제든 들춰볼 ‘연애 지침서’를 지향한 셈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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