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북 전주에 산 지 올해로 20년이다. 외지인으로서 처음엔 전주 문화가 영 마땅치 않게 여겨졌는데, 요즘엔 “전주는 대한민국의 희망”이라고까지 떠들고 다닐 정도로 전주 문화와 전주 사람들의 기질을 사랑하게 되었다. 왜 그런가? 오늘 제18대 총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건, 우리 모두 “한국정치, 이대로 좋은가?”라는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는 게 좋겠다는 뜻에서 그 이유를 말씀 드려 볼까 한다.
■ 악착 같지 않은 화합의 포용력
나는 도무지 악착같은 면이 없는 전주 사람들의 기질을 자주 비판하곤 했는데, 지난 20년간의 한국사회를 관찰하고 평가하면서 생각을 좀 달리 하게 되었다. 아무리 갈등과 분열이 민주주의의 꽃인 동시에 비용이라지만,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국익을 관철하기 위한 방법론 상의 갈등과 분열이라기보다는 자기 밥그릇을 더 많이 챙기기 위한 탐욕의 갈등과 분열이 아니었을까? 늘 명분은 화려하게 둘러대지만, 이념은 이익의 포장지에 불과했던 건 아닐까?
이념이건 이익이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기 주장을 관철해 내려는 호전성에 질렸다고나 할까. 화이부동(和而不同)은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전투성을 과시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우리 모두의 심성은 지난 세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원동력이기도 했겠지만, 이젠 좀 다른 삶의 문법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전주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정당한 몫을 챙기지 못하면서도 화를 낼 줄도 모르고 응징을 할 줄도 모른다고 비웃던 내 생각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전국의 모든 지역들이 다 “우리가 가장 못 산다”고 외치는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판단하긴 쉽지 않겠지만, 전북의 인구 통계 이상 드라마틱한 증거를 찾기는 어려우리라. 1966년 252만 명이었던 전북의 인구는 그간의 인구증가율을 따지면 오늘날 417만 명이 되어야 하지만, 지금 그 반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178만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사정이 그러한데도 전주시민들에겐 분노가 없다. 그간 나는 그걸 ‘어리석다’고 보았지만, 이젠 화이부동으로 보게 되었다. 화이부동은 다른 사람과 생각을 같이하지는 않지만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포용력을 말한다. 천년고도(千年古都) 전주의 문화유산엔 동서(東西) 융합을 시도한 것들이 많으며, 심지어는 전주의 대표 음식이라 할 비빔밥에서까지 그런 조화와 화합의 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
비빔밥의 정신을 본받아 우리 모두 이념과 이익에 대해 좀 너그러워지면 좋겠다. 아니 어리숙해지면 더욱 좋겠다. 이명박 정권 사람들부터 사나움을 자제하고 겸허해지면 좋겠다. 그 반대편 사람들도 이명박 정권과 겸허하게 대화를 나누는 시도를 해보면 좋겠다. 독설을 날리는 방식으론 양쪽 모두의 악감정만 증폭시켜 극단적 대결만 불러올 뿐이다.
“상대편이 어떠어떠하니까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건 우리 모두에게 너무도 익숙한 레퍼터리가 아닌가. 지금 우리가 애들 싸움을 하는 건 아니잖은가. 상대편이 아무리 모질고 괘씸하게 굴었다 하더라도, 이쪽에서 한번 더 양보하고 포용하면 얼마든지 대화가 가능하다. 자신의 이익이나 자존심이나 인정욕구가 아니라, 진정 서민을 생각한다면 대화는 선택이 아니라 당위다.
■ 전주에서 그 기운 받아들이길
상대편에 대해 도무지 용서가 안 되는 분들은 전주를 방문해 ‘낯설게 보는’ 자세로 비빔밥을 드실 걸 권하고 싶다. 각기 전혀 다른 음식 재료들이 어우러져 화합의 묘미를 보여주는 비빔밥에서 반드시 무언가 배울 게 있을 것이다. 전주시도 때마침 전주시 비전의 철학적 원리로 화이부동을 역설하고 나섰다. 5월 1일 시작되는 전주국제영화제도 볼 겸 전주에 오셔서 화이부동의 기운을 흡입하고 가는 분들이 많기를 바란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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