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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소연란(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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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소연란(蘭)

입력
2008.04.0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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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은사이신 근원(近園) 김양동 선생께서 결혼선물로 멋들어진 휘호를 써 주셨다. 단아한 예서체로 씌어진 ‘금슬춘장재(琴瑟春長在) 지란덕자형(芝蘭德自馨)’. 처음에는 ‘부부 사랑이 길고, 군자의 덕이 익어가기를’ 하는 뜻으로 풀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늘 침실 머리맡에 걸어두라”는 당부를 함께 떠올리며 점차 ‘부부 사랑이 길어야 군자의 덕도 향기롭다’는 뜻으로 새기게 됐다. 그래야 앞의 글귀가 강조되고, 거실 벽이나 책상 앞에 걸 게 아니라 침대 머리맡에 걸어두어야 할 이유가 뚜렷해진다.

■ 지란은 지초와 난초를 합쳐서 이르는 말이다. 화려한 꽃을 피우지 않으면서도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두 풀꽃처럼 맑고 높은 군자의 품격을 가리키는 말로 예로부터 쓰였다. 아직까지 지초의 향기를 느껴본 적이라고는 뿌리인 자초(紫草)의 빛깔과 향기를 담은 진도 홍주를 맛본 게 고작이지만 난초 향기는 비교적 자주 맡았다. 얼마 전 꽃대가 솟은 난초 화분 두 개를 얻어 공부방에 두었더니, 어느새 꽃이 피었는지 문을 열 때마다 옅고도 신비한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넝쿨장미를 한 움큼 비벼 맡는 장미향처럼 코보다는 머리에 오래 남는 향이다.

■ 많은 애호가들이 꽃이 화사하기로는 서양란 발치에도 못 미치는 동양란에 심취하는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간다. 동양란은 대개 중국이 원산지이나 워낙 종류가 다양한 한란은 한국 자생종도 많다. 그런데 수석이나 분재에 빠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난초 애호가들도 정상적이고 평범한 것보다는 비정상적이고 희귀한 난초를 찾아 헤맨다. 외딴 섬의 절벽이나 고지대 등의 험한 자연조건에 적응하기 위해, 또는 바이러스 감염 등 질병을 통해 돌연변이를 겪은 희귀종일수록 고가로 거래된다. 2006년 고양 꽃박람회에서 변이종 풍란이 3억원에 거래된 일도 있다.

■ 희귀변이종을 향한 애호가들의 열망이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에게 쏠려 있다. 난초 씨앗에 강한 방사능을 띤 우주선(線)을 쐬어 새로운 변이종의 탄생 여부를 확인하는 실험이 이뤄진다. 난초 씨앗은 2월5일 러시아 우주화물선 편으로 국제우주정거장에 올라가 있고, 19일 귀환하는 이소연씨가 가지고 온다. 예상대로 희귀변이종이 탄생하면 ‘소연란’으로 명명된다니, 이씨는 물론 난초 애호가들에게도 커다란 기쁨이 될 만하다. 다만 난초를 보는 눈이 옛날과 달라 마치 부귀의 꽃 모란을 대하듯 바뀐 것 자체가 돌연변이라는 씁쓸한 느낌은 남는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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