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개헌을 논하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그렇다. 선거일에 어울리지 않는 얘기다. 정치부 기자라면 어느 당이 몇 석을 얻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아야지 엉뚱한 화두나 던져서야 되느냐고 혀를 차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 새 정부가 출범한지 며칠이나 됐다고 개헌을 운운하느냐고 불쾌해 할 분들도 있을 것이다.
맞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지 45일밖에 안 됐다. 대선 직후부터 따져도 80여 일밖에 지나지 않았다. 한창 일을 시작해야 할 때 개헌을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일이다.
그래도 개헌 문제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왜냐고? 바로 새 정부가 출범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지금의 상황이 역설적으로 개헌 논의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가 있으면 으레 이합집산과 권력투쟁의 혼돈이 곁들여지기 마련이지만 4ㆍ9 총선의 막전막후는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오죽하면 ‘희한한 선거’라는 비평이 나올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나오는 광고를 보다가 이게 한나라당 광고가 아니고 친박연대 광고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연 실색하게 된다.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에 있는데 탈당한 사람들은 그를 팔고 있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얘기를 꺼내는 것은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굳이 따지려고 해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판단의 회색지대에 머물게 된다. 공천의 칼날이 여럿을 벴는데 기준과 원칙이 있는 것 같지 않고 박 전 대표측을 겨누었다는 느낌을 주니 공천자측에 원인제공의 책임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당을 뛰쳐나간 사람들이 박 전 대표를 간판으로 내걸고, 당에 남은 박 전 대표가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는 것 또한 정도(正道)는 아니다. 국민교육에도 좋지 않은 상황이 너절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희한한 상황 뒤에 숨겨져 있는 본질을 보자는 것이다. 그 본질은 권력투쟁이다. 그것도 5년 뒤 대권을 염두에 둔 투쟁이다. 정당의 기반이 흔들려도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무리수가 횡행하고, 정당을 팽개친 채 오로지 특정인에 충성만 해도 되는 구조는 승자독식의 5년 단임제 대통령제 때문이다. 지금 고생해도 대권을 쥐는 쪽에 배팅을 해 성공하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믿음이 비정상적이고 몰상식한 무리수를 감행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투쟁과 게임에 두 사람 정도가 얽혀있지만 선거 후에는 이 사람, 저 사람이 숟가락을 얹어 더 복잡해질 것이다. 이제 그런 게임을 차단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개헌은 공론화하기가 쉽지 않다. 자칫 통제할 수 없는 국론분열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다. 지금의 혼돈도 감내하기에는 너무 대가가 크다.
한 가지 제안을 한다면 17대 총선을 앞두고 이루어졌던 선거법 개정처럼 민간 부분에서 먼저 치밀한 연구를 선행해보면 어떨까 싶다. 그리고 그 연구를 통해 권력구조 뿐만 아니라 통일에 대비한 조항, 시대 흐름에 뒤떨어지는 부분까지 손질해 정치권으로 넘겨 보자는 것이다. 임기 말 개헌논의는 성공한 적이 없다. 지금 이해관계가 없을 때 차분하게 연구와 논의를 진행시켜보자.
이영성 부국장 겸 정치부장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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