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의 가장 좋은 터에는 꼭 사찰이 자리잡듯, 산자락의 가장 전망 좋은 곳에는 산성이 둘러선다.
시간의 더께가 짙게 내려앉은 성벽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길게 출렁이는 산성을 걷는 길. 발걸음 하나 하나에 수백년의 시간을 담는 역사의 순례길이다.
충북 청주에 그 어느 산성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산성이 하나 있다. 청원군과 경계에 있는 상당산성이다. 청주 시민들 건강과 편안한 휴식을 제공하는 보물과도 같은 존재다.
상당산성은 상당산(492m)의 8부 능선에 길이 4.2km에 걸쳐 빙 둘러있다. 오목한 분지를 품에 안고 산허리를 따라 쌓아나간 산성이다.
높은 산으로 걸어 올라야 만나는 다른 산성과 달리 산성 입구까지 찻길이 놓여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고개를 돌리면 너른 잔디밭 위로 상당산성의 정문인 공남문을 중심으로 양 옆으로 거대한 성벽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문 안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문루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문루에 서서 앞을 바라보면 청원군 낭성면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따금씩 성벽을 따라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은 가지각색이다. 노란 체육복을 입은 유치원생의 노란 웃음소리가 성벽에 메아리치고, 손을 잡고 함께 걷는 연인의 뒷모습에선 애정이 느껴진다.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는 노인들에게도, 땀이 솟도록 성큼성큼 걸어 오르는 장년에게도 성벽은 너그러이 길을 터주고 있다.
상당산성 산책은 성벽 위를 걷거나 성벽 바로 옆에 나란히 나 있는 숲길을 걸어도 좋다. 성벽 길은 청주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는 조망이 좋고, 송림 우거진 숲길에서는 초록의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성벽 위엔 아직도 찬기운 남은 봄바람이 넘나들어 옷깃을 세워야 하지만, 바로 옆 숲길엔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아늑하다.
성벽 위를 거닐며 이런 저런 상상에 빠져든다. 사극 드라마에서 많이 보았던 전투 신을 떠올려 본다. 이쯤에서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들에게 뜨거운 기름을 부었을까. 돌덩이를 던진 곳은 이곳일까. 여기에 사다리를 걸치고 올라와 칼을 휘둘렀겠지. 그리고 이 산성을 쌓았을 민초들의 고통도 함께 그려본다.
주먹 만한 것부터 머리통 만한 것까지 일일이 손으로 쌓아올렸을 돌덩어리들이 마음을 아리게 한다. 셀 수 없이 많은 날들의 피와 땀, 눈물을 접착제 삼아 석축을 쌓아 올렸으리라.
서문인 미호문을 향해 걷는 길이 상당산성에서 가장 장쾌한 시야가 열리는 곳이다. 청주시내와 증평평야가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그렇게 성벽을 따라 걷기를 한시간여, 성벽 아래 한옥마을이 나타난다. 저수지를 끼고 30여가구가 살고 있는 산성마을이다. 설렁탕 토종닭 오리 손두부 등을 파는 음식점들이다. 산성을 걸으며 시장해진 속을 든든하게 채울 수 있는 곳이다.
청주=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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