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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名品 먹거리] 깊은 손맛 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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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名品 먹거리] 깊은 손맛 만두

입력
2008.04.0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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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의 '위위엔(藝園)'. 역사가 오랜 중국 정원이다. 상하이 구시가지에 위치한, 16세기에 지어진 명소다. 중국 내 여타 정원들에 비해 아담한 규모, 그 규모가 결코 작지않게 느껴지는 설계나 꾸밈으로 관광객이 줄을 서 입장한다.

위위엔이 유명한 이유 가운데 또 하나는 정원 앞 시장 골목. 우리나라의 재래시장들이 속속 현대화를 위해 리모델링되고 있지만, 위위엔 앞 시장통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오래 된 사탕가게와 스타박스 커피점이 새 건물에 함께 영업 중이다. 시장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골목 하나를 다 잡아먹을 만큼 긴 줄이 보이는데, 그 줄을 따라 가면 맛있는 냄새가 난다. 밀가루 찌는 냄새, 찜통의 젖은 대나무 냄새, 고기 냄새, 간장 냄새….

■ 소롱포 만두

상하이 위위엔 앞 시장통에 위치한 만두집 '난시앙(南翔)'은 100년 역사를 자랑한다. 손으로 빚은 쫄깃한 만두피를 씹는 맛은 먹는 이를 1단계 만족시킨다. 2단계 만족은 속 맛. 간이 딱 맞는 육수가 만두소를 촉촉이 적시며 대기하고 있는 모양에 미소가 절로 인다.

소롱포(小籠包)는 중국 발음으로 '시아오롱빠오'인데, '작은 대나무 통에서 찐 만두'라는 뜻이다. 이름에 대나무 통이 명시되어 있기에 익히는 과정에서 대나무 용기를 쓰는 것이 당연하고, 그렇게 소롱포 만두에서는 대나무 향기가 난다.

그 향을 음미하며 맛보는 것이 시식 포인트. 좋은 대나무를 써야 옳고, 그 향이 잘 배는 농도의 반죽을 빚는 것이 중요하며, 그 향기와 어울리는 육수나 소를 써야 완성되는 어려운 맛이다.

하루 이틀에 얻어지는 노하우가 아니라는 말. 청나라 말기부터 이어진 상하이 '난시앙' 만두집의 맛이 아직도 세계 각국 여행자들과 현지인들의 입맛에 으뜸으로 꼽히는 이유가 아마 역사를 가진 비법에 있지 싶다.

소롱포를 먹을 때는 만두 한 알을 사기 스푼에 올리고 우선 피를 조금 찢는다. 뜨거운 김이 오르며 육수가 찔끔 흘러나오는데, 이렇게 열기를 한 번 빼주지 않고 무턱대고 입에 넣었다가는 입 안을 홀랑 델 수 있다. 속은 돼지고기를 기본으로 하여 게살, 새우, 버섯을 섞어 만들 수 있고 또 게알과 삭스핀 혹은 소고기와 부추 등을 섞어 넣기도 한다.

소롱포의 찔끔 나오는 육수가 아쉬운 이들을 위한 만두 '탕빠오'는 아예 육수를 넉넉히 넣은 만두로 큼직하다. 만두의 정수리 부분에 대나무 빨대를 꽂아 스프를 마시고 피를 먹는데, 먹는 재미가 있어 관광객들이 좋아한다.

■ 일본 만두가 된 '교자'

중국에서는 찐빵 모양에 속이 없는 것이 원래 '만두'로 불렸다. 속을 넣고, 주로 물에 삶아내는 만두인 '교자'가 일본에 전해진 지는 반세기 남짓. 하카다(후쿠오카)나 요코하마와 같이 항구가 있는 도시에서는 특히 교자의 역사가 길다.

교자라고 하면 주로 '야끼교자' 즉, 군만두를 칭하는 것이 보통이고 '수이 교자'라고 앞에 물 수(水)자를 붙여서 물만두를 따로 분류한다. 중국에서 전해진 메뉴지만, 일본만의 방식으로 발전해 왔는데 다른 점은 굽는 방식에 있다.

중국식 군만두를 '튀기는' 맛으로 먹는다면, 일본식 '야끼 교자'는 '지지는' 맛으로 먹는다고나 할까. 반드시 철판을 이용하는데, 뜨겁게 달궈진 철판에 물을 자작하게 부어가며 찌는 듯이 익히다가 마지막에 바싹 지져내는 방법이 일본식이다.

자연히 맛이 훨씬 가볍고, 물에 잽싸게 쪄지는 효과까지 있어 속이 촉촉하게 남는다. 끝에 지져내는 단계에서 바삭해지는 교자는 씹는 첫맛과 촉촉하게 향이 퍼지는 속맛으로 먹는다.

특히 교자로 유명한 하카다 만두는 그 크기까지 아주 작아서 한 입에 넣고 먹는데, 입 안에서 교차하는 바삭하고도 부드러운 치감의 대비가 흥미롭다. 지금만큼 풍요롭지 못했던 시절의 먹거리가 21세기의 입맛에도 인기가 여전하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도쿄의 젊은 아이들로 북적거리는 하라주쿠에 위치한 '하라주쿠 교자' 만두집만 봐도 그렇다. 교자, 수이 교자, 숙주 반찬으로 유명한 이곳은 새벽까지 밤을 잊은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클러빙 후, 데이트 후, 회식 후의 부족한 2%를 바삭한 교자 한 접시와 생맥주 한 잔으로 채우고 집에 돌아간다.

■ 이북식 손만두

상하이의 소롱포, 하카다 교자를 논하자니 우리의 이북 만두를 아니 이야기할 수 없는 일. 특히나 아버지 쪽 핏줄이 평안도인 나로서는 더욱 그렇다. 어릴 적, 엄마가 눈덩이만큼 빚은 반죽을 밀대로 밀면 꼬맹이였던 내가 주전자 뚜껑으로 모양을 ??눌러 피를 도마로부터 떼어냈던 기억이 난다. 이북집이면서 유난히 할아버지, 아빠, 작은아버지가 '만두 마니아'여서 명절이면 만두를 공장처럼 빚어냈다.

새색시 시절 엄마는 함지에 그득한 만두 속을 보면서 "저걸 다 언제 빚나" 한숨만 쉬었다고. 그때에 비하면 결혼 4년차에 명절마다 뺀질대는 나는 참으로 팔자가 늘어졌다. 시대의 흐름에 달라진 것은 며느리들의 일감만은 아닌 듯. 기온이 달라졌다.

옛날에는 겨울 온도가 요즘에 비해 낮았기 때문에 만두를 빚어 채반에 죽 돌려 얹고 내놓으면 그대로 꽝꽝 얼었기 때문에 냉동에 넣을 필요 없이 명절 내내 뒤뜰이나 다용도실에서 집어다 먹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냥 투박한 이북만두의 특징은 고기소를 조금만, 잘 익은 김치 다진 것과 두부 속을 가득, 넣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입 안 가득 우물거려야 할 만큼 속이 든든하면서 맛은 담백해진다.

묵직한 속을 감당하기 위해 피는 도톰하게 빚는다. 익히고 나면 도톰한 피가 울퉁불퉁 익어 투박할 수밖에. 평양 만두에 비해 크기가 아담한 개성 만두는 더 예쁘게 생겼지만. 나의 친정사람들은 평양식으로 설날에도 만두국을 먹는데, 만두와 국물이 남으면 그걸 그대로 '김치말이'한다.

김치 국물과 육수를 섞어 조선간장 한 방울, 밥을 말고 여기에 먹다 남긴 만두를 넣어 푹푹 꺼뜨려가며 맛을 돕는 거다. 순 서울 사람인 엄마의 특별 레시피인 '만두 김치말이'! 언뜻 보면 '잡탕'이라 선뜻 수저를 들지 않던 손님도 먹성 좋은 울 식구 틈에 껴서 한 번만 맛을 보면 그 원초적인 맛에 중독되어 버린다.

아직도 '평양 면옥'(02-2267-7784), '필동 면옥'(02-2266-2611) 등의 이북식 면옥에서는 투박하게 빚은 만두를 삶아 건진 '접시 만두'나 만두국을 먹을 수 있으니 궁금한 분들은 고고씽하시라!

17세기에 지어진 최초의 한글 요리책 <음식 디미방> 에도 거론되는 만두. 우리의 만두 역사는 소롱포에 지지 않고, 교자보다 길다. 아니, 길고 짧음을 논할 필요가 무어 있나. 탄수화물과 단백질, 비타민이 적절하게 믹스된 영양 만점의 만두를 쪄 먹고, 지져 먹고, 삶아 먹고 입과 마음의 온기를 얻으면 그만인 것을.

박재은ㆍ음식 에세이 <밥 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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