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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없는 범인' 왜 못잡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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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없는 범인' 왜 못잡나

입력
2008.04.0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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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경찰청은 최근 KT와 하나로텔레콤 등 국내 대형 통신업체 홈페이지를 해킹해 고객 정보를 빼간 일당을 검거한 뒤 허탈 상태에 빠졌다. 주범은 필리핀에서 원격 조종하고, 국내에서 붙잡은 일당은 피라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필리핀에 있는 주범은 과거에도 국내 인터넷 업체를 해킹한 전문가”라며 “필리핀 경찰과 공조해 현지에서 검거할 생각이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2. 서울 동작경찰서는 최근 어학연수로 입국한 중국인 두 명을 붙잡아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중국에 거점을 두고 ‘보이스 피싱’ 수법으로 돈을 챙긴 일당이 파견한 ‘입국조’ 였다.

‘보이스 피싱’ 주범이 개설한 국내 계좌에서 돈을 빼내려다가 덜미를 잡힌 것이다. 경찰은 “중국 현지의 거점을 분쇄하기 전에는 비슷한 범죄 피해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이나 대만, 동남아 등지에 거점을 둔 범죄조직이 인터넷과 국제전화를 통해 한국 기업이나 한국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이른바 ‘어브로드(abroad)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찰은 외국 당국과의 공조 강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범죄 뿌리가 외국에 있는데다가 이런 유형의 범죄 속성상 ‘온라인’에서 전광석화처럼 이뤄지는 바람에 사후 수습에 매달리는 실정이다.

대표 사례는 검찰ㆍ경찰이나 금융기관 직원을 사칭해 연금환급, 카드대금 연체 등을 빌미로 돈을 송금 받는 ‘보이스 피싱’이다. 이들 일당은 중국이나 대만에 거점을 두고 있는데, 과거 수법이 통하지 않자 최근에는 ‘자녀를 납치했다’는 사기 전화 수법까지 동원해 불특정 한국인을 대상으로 돈을 뜯어내고 있다.

이들은 또 노숙자 명의의 대포 계좌에 빼돌린 돈을 회수하기 위해, 1~3개월마다 인출조를 한국에 파견하는데 인출조는 2% 가량의 ‘수고비’만 받고 나머지는 현지 조직이 챙긴다.

신용카드 관련 범죄도 또다른 유형이다. 서울 혜화경찰서는 최근 불법 복제한 한국인 명의의 신용카드를 들고 입국해 고가 상품을 구입한 뒤 되팔아 현금을 챙기려던 말레이시아인과 홍콩인을 붙잡았다.

경찰은 “검거된 외국인은 말레이시아에 본부를 둔 조직의 지령을 받는 심부름꾼에 불과하다”며 “현지 조직을 없애지 않는 한 비슷한 범죄는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인터넷 쇼핑몰이나 통신업체에 대해 직접적인 해킹 공격을 벌여 거액을 챙기거나, 한국에서는 불법이지만 외국에서는 허용된 음락ㆍ도박사이트를 개설하는 수법도 우리나라 경찰이 손을 쓸 수 없는 ‘어브로드 범죄’ 사례다.

해외로부터의 온라인 공격에 대한 경찰 대응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뿌리를 제거하려면 국경을 넘어야 하는데, 외국 경찰과의 공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만 ‘보이스 피싱’ 조직을 붙잡은 한 수사관은 “한국인 수십만 명의 개인정보가 중국 등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며 “현지 조직이 파견하는 ‘입국조’는 1~2개월 한국에서 활동한 뒤 출국해 버리고, 또 다른 조가 위조여권을 이용해 입국하고 있어 현지 경찰과의 공조가 없다면 이들의 검거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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