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 수출국은 곳간에 자물쇠를 채우고 있고, 수입국은 대책 마련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옥수수, 밀 파동에 이어 이번엔 쌀이 사상 최고가를 넘어서며 파동의 진원지가 됐다. 전 세계 곳곳에서 “먹을 것을 달라”는 아우성과 폭동이 번지고 있다. 국제 식량 위기가 우려를 넘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3일(현지시간)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5월 인도분 쌀 선물 가격은 장중 전날보다 2.8% 급등한 100파운드 당 20.35달러에 달하며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올 들어 상승폭이 무려 42%다.
국제 쌀 가격 급등은 ‘수요 확대 → 가격 상승 → 공급 통제 → 가격 급등’의 다른 곡물 가격 상승 흐름을 그대로 좇고 있다. 쌀 수출 통제국은 중국, 인도, 베트남, 이집트 등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 세계 2위 쌀 수출국인 베트남은 이날 수출 통제 조치를 6월까지 연장키로 하면서 공급 부족 우려를 더욱 부추겼다. 인도네시아도 곧 쌀 수출 통제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곡물들의 가격 상승세도 여전하다. 옥수수 가격은 이날 CBOT에서 부셸당 5.9925달러까지 올라 역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1년 간 상승폭이 71%에 달한다. 최근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콩 가격도 1년 동안 64% 뛰었고, 밀 가격 역시 50% 이상 급등했다.
식량 파동은 이미 시작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태국의 일부 슈퍼마켓이 1인당 쌀 판매 상한을 설정했고, 세계 1위 쌀 수입국인 필리핀은 1인당 하루 4㎏로 쌀 배급을 제한하는 등 초긴축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홍콩에서는 쌀 사재기 열풍까지 몰아치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주식인 옥수수 품귀 현상으로 폭동이 일어났고, 이집트에서는 빵 배급을 기다리던 사람들끼리 충돌하면서 7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카메룬, 세네갈 등에서도 쌀 가격 폭등으로 인한 폭동이 일어났다.
국제기구의 위기 경고는 섬뜩하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는 2일 “미국이 1930년대 대공황 극복을 위해 뉴딜 정책을 취했던 것처럼, 식량 위기 타개를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가 시급하다”고 했고, 아시아개발은행(ADB) 이프잘 알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이후 식량 값이 폭등하고 있는 것은 아시아에 대한 경종”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월 국제연합(UN)은 올해 중국을 포함한 36개국이 식량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우리나라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쌀 자급률이 95%를 넘고 2개월치 소비량을 비축했다지만, 곡물 전체로는 8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더구나 지금의 식량 위기는 중국, 인도 등의 고성장에 따른 소비구조 변화에서 비롯된 만큼 장기화 가능성이 높다. 세계식량기구(FAO)는 “곡물 가격이 싼 시대는 끝났다. 수요 증가와 기후 변화, 고유가 등으로 당분간 곡물가 고공행진이 지속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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