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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밖에서 본 한국사

입력
2008.04.0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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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협 지음/돌베개 발행ㆍ344쪽ㆍ1만3,000원

‘민족주의의 극복’은 역사학계의 뜨거운 감자다. 식민지 역사관에 대한 반작용으로 민족주의를 강조해온 진보성향의 학자들도 최근 민족주의의 자기중심성ㆍ배타성극복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우파역사가들은 아예 ‘탈민족주의’를 노골화하며 최근 <대안교과서> 류의 역사책을 내놓기까지 했다.

<역사 앞에서> 의 저자인 역사학자 김성칠(1913~1951)의 피를 물려받은 김기협은 이 같은 문제의 해결책으로 ‘민족주의의 구조조정’을 궁리한다. 그것은 민족주의를 표현하는 양식인 국사를 재구성함으로써 가능하다.

이를 위해 민족적 정체성과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이 다른 조선족의 시선으로 우리 역사를 응시하는 방식을 실험한다. 흑백론으로 빠지기 쉬운 민족주의사관에서 벗어나 우리역사를 중화문명 자장 안에 있는 동아시아 역사의 일부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은 꽤 효과적이다.

그는 거대문명의 자장 안에 있으면서도 우리가 독립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원리를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원리로 파악한다. 이는 고등한 중국문명을 수용하지만, 독자적인 운영이 가능하도록 토착화한 일종의 실용주의다.

저자의 입장에서 서면 우리는 다소 불편한 진실과 맞닥뜨려야 한다. 가령 <훈민정음> 의 반포를 민족적 자부심의 발현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조선의 말과 중국의 글을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형편없이 폄하돼온 ‘사대(事大)’ 역시 재조명된다.

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서도 국가경영에 있어 외부와의 관계를 도외시할 수 없다면 ‘사대’는 천하질서에 능동적으로 공헌한다는 명분으로 자존심을 지키면서도 강자의 신뢰를 얻어낸 효율적인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혹 마음이 언짢아질 독자들을 위해, 임진왜란 때 이외에는 명군이 조선에 주둔한 일이 없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사대관계는 지금 남한의 미국에 대한 종속관계보다 독립성이 강한 것이었다고 덧붙인다.

동양사 전공자로서 국사를 바라보는 강점 덕택에, 한중 관계사와 한일 관계사를 주목한 비교사적인 역사서술은 강력한 ‘민족사관’의 자장 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 또한 원 지배기의 정동행성의 성격을 현재 남한의 한미연합사령부와 비교해 설명하는 등 과거의 역사에서 현재의 문제를 끌어내는 저널리스트적인 글쓰기 방식도 책장을 넘기는 손을 재촉한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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