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맑은샘 아마7단(27). 특이한 이름과 화려한 아마추어대회 입상 경력(전국 대회 18회 우승, 준우승 9번)으로 바둑팬들에게는 웬만한 프로 기사보다 더 유명한 이름이다.
2000년대초 국내 아마 바둑계 부동의 랭킹 1위였지만 프로와는 인연이 없었는지 수 차례 도전에도 불구하고 번번히 입단에 실패한 후, 4년전 홀연히 한국 바둑계를 떠나 일본으로 건너갔다.
현재 도쿄에서 본인의 성을 딴 '홍 도장'(洪道場)을 개설,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는 홍맑은샘이 며칠 전 양천대일바둑도장, 유창혁도장, 허장회도장 등 국내 유명 바둑 도장과 교류전을 벌이기 위해 제자 23명을 이끌고 한국을 찾았다.
이제 승부사의 꿈을 접고 지도자로 변신, 일본에서 열심히 바둑 꿈나무를 키우고 있는 '비운의 아마 강자' 홍맑은샘을 만나 요즘 근황과 최근 일본 바둑계 현황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에 가게 된 계기는.
"2002년 도쿄에서 열린 세계아마추어바둑선수권대회에 출전하면서 일본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 현실적으로 입단이 어려우니 나름대로 불루 오션을 찾은 셈이다. 실은 일본에서 일반인 입단대회에 출전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는데 일본기원에서 받아 주지 않았다."
-'홍 도장'에 대해 소개해 달라.
"2004년 일본에 건너가 처음에는 아름아름으로 개인지도를 하다가 2005년에 도쿄 일본기원 부근 이찌가야에 도장을 열었다. 현재 24명 정원제로 운영하고 있다. 일본기원 연구생 가운데 가장 기력이 강한 그룹인 A조와 B조(각 10명) 소속 5명이 홍도장에 적을 두고 있다. 도쿄에 있는 바둑도장 중에서 가장 많은 숫자다."
-이번 교류전의 목적은.
"마침 봄 방학을 맞아 홍도장 원생들에게 좀더 분발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우리 아이들의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에 한 수 배우는 기분으로 임하고 있다. 역시 예상대로 우리 측의 참패다."
-일본의 연구생들은 어떻게 공부하나.
"일본에는 한국과 같은 입단을 위한 전문 도장이 드물다. 도쿄에는 일본 아마 바둑계 대부인 기쿠치 선생이 운영하는 녹성학원 외에 두어개 정도다. 이 밖에 몇몇 프로 기사들이 소규모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조치훈 9단과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이 제자들을 많이 양성했는데 지금은 중단된 상태다."
-한일 양국 프로 지망생의 차이점이라면.
"일본 아이들은 한 마디로 한국에 비해 '덜 치열하다'. 바둑은 내가 살기 위해서 반드시 상대를 쓰러뜨려야 하는 게임인데 그런 악착같은 마음가짐이 부족하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학교 교육을 중시해서 대부분 방과후에만 바둑 공부를 한다는 게 큰 어려움이다. 이 때문에 한국이나 중국에 비해 실력 차이가 난다고 본다."
-일본기원의 한 해 입단자 수는 얼마나 되나.
"1년에 총 6명을 뽑는다. 일본기원(도쿄)에서 3명을 뽑고 관서총본부인 오사카에서 1명, 중부총본부인 나고야에서 1명, 그리고 여자기사 1명을 선발한다. 한국보다 적지만 일본은 현재 프로 기사가 400명에 육박해 더 늘릴 계획이 없다고 한다."
-최근 국제 대회에서 일본 바둑의 성적이 좋지 않다. 이에 대한 일본기원이나 팬들의 반응은 어떤가.
"일본기원은 겉으로 덤덤하지만 속은 그리 좋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일본 바둑 팬들의 실망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일본의 기성, 명인, 본인방이 세계 대회에서 한국이나 중국의 젊은 기사들에게 패해 1, 2회전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분노하는 팬들이 많다. 한국처럼 인터넷 문화가 발달하지 못해서 그렇지 만일 그런 통로가 있다면 엄청난 질책이 쏟아질 것이다."
-일본 여자와 결혼하고 얼마전 득남까지 했는데.
"아내 카나코(28)가 2002년 세계대회 때 내가 두는 바둑의 기록을 맡은 게 인연이 돼서 깊이 사귀게 됐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가 심해서 고민도 많았다. 그래서 정식 결혼식도 아직 올리지 못했다. 최근 아들이 태어나면서 아버지도 많이 누그러지셨다."
-얼마 전 아마 명인전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장쉬 명인과의 기념 대국에서도 승리했다.
"일본의 전국 대회에서 처음 우승해서 무척 기뻤다. 일본에서는 아마 대회에 상금이 없다. 대신 우승자에게는 그에 걸맞는 예우를 해준다. 이번에도 아사히신문사에서 150명의 바둑팬들을 초청해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쉬와 대국을 가졌고 팬들 앞에서 공개 해설회를 갖는 등 뭔가 인정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갈수록 바둑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게 문제다. 일본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일본에서는 현재 바둑 인구를 300만 정도로 보고 있다. 이마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따라서 低걋結“?바둑 보급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최근 일본기원이 동경대와 손잡고 새로운 '바둑 교수법'에 대해 연구 중이다. 쉽게 바둑을 익힐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다. 이미 책도 한 권 나왔다.
또한 프로 기사를 초등학교에 파견해 어린이들에게 바둑을 지도하고 있다. 재미있는 일이 있는데, 만화 고스트바둑왕 덕분에 100만명의 꼬마들이 새로 바둑에 입문했다고 보고 새로운 바둑 만화와 시나리오 등을 공모해 어린이 바둑붐 조성을 위해 노력중이라는 사실이다."
-향후 목표나 포부가 있다면.
"도장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고 일본 여자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으니 이 곳에 완전히 정착할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는 대회에 꾸준히 참가해서 타이틀을 딸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매년 제자들이 한 명씩 입단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10년후 쯤에는 제자 중 누군가가 타이틀을 획득하는 꿈을 꾸곤 한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0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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