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니(Sony)는 1955년 일본 최초의 소형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내놓으며 일본 가전업계의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이어 61년 전 세계가 한 눈에 반한 ‘Black&Silver’라는 독특한 스타일을 창조하며 세계적인 디자인 가전업체로 발돋움했다. 이후 소니가 내놓은 가전제품은 ‘사용하기 쉬우면서도(Black) 첨단 기술력을 갖춘(Silver) 제품’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소니 만의 철학을 함축한 디자인으로 일본 기업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탄탄히 굳힌 것이다.
#2. 올해 초 부산에서는 독특한 외관의 아파트가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현대산업개발이 세계적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와 손잡고 해운대의 파도, 부산의 상징인 동백꽃 등 아름다운 곡선을 형상화한 ‘해운대 아이파크’로, ‘미니멀’과 ‘모던’이라는 디자인 철학을 녹여 실용적이고 편리한 스타일을 추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전국 최고의 미분양률을 기록하던 부산에서 2.79대 1이라는 경이적인 청약 경쟁률을 보이며 전 평형이 마감됐다.
소비자의 감성을 움직이는 창의적인 디자인은 기본이다. 여기에 기업이나 브랜드를 드러내지 않아도 소비자들이 단번에 구분할 수 있는 기업 고유의 철학(디자인 정체성)이 더해져야만 차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철학이 담긴 디자인의 위력은 글로벌 기업의 성장사에서 얼마든지 발견된다. 부엌도 예술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주방업계의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 이탈리아 업체 ‘알레시’는 실존주의 철학을 응용한 독특한 디자인으로 명성을 얻었다. 휘파람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새 머리 모양의 주전자 꼭지, 마르코폴로 대성당의 종탑을 연상시키는 커피세트, 화분 모양의 변기청소 솔 등. 알레시는 냄비 꼭지 하나 디자인 하는데도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건축가들을 동참시켜 ‘주방용품을 넘어선 예술’이라는 자신만의 철학을 전파했다.
덴마크의 오디오 전문업체 ‘뱅 앤 올룹슨(B&O)’은 ‘모두에게 다가설 수 있는 디자인’이라는 철학을 일관되게 자신들의 제품에 적용해 왔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이 단순히 오디오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함께하는 생활의 동반자로 느끼게 함으로써 고급 오디오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최근 국내 기업들도 고유의 철학을 담기 위한 디자인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런 노력이 가장 활발한 곳은 건설업계다. 금호건설은 한글패션으로 유명한 이상봉 디자이너와 손잡고 현재 분양 중인 ‘리첸시아 중동’의 거실 벽지와 현관문에 한국의 전통대문을 형상화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현관에 들어설 때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데다 전통문양이 들어간 벽지를 통해 한국적 주거공간의 특성을 살렸다는 호평을 받았다.
GS건설도 ‘근경과 원경에서의 특별한 경험’이라는 디자인 철학을 앞세워 ‘자이’ 브랜드를 명품 주거단지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 아파트 옥상 지붕라인과 경관조명을 통일하고, 필로티 및 주동입구 로비 등의 디자인을 특화해 ‘디자인 통합을 통한 고급화’를 추구했다. GS건설의 원종일 주택담당 상무는 “입주민들이 아파트 공간을 기업 철학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인식할 때 비로소 진정한 명품 주거단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기업 철학을 디자인화하는 데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 이상봉 디자이너는 “기업 이미지를 함축하는 디자인을 만들려면 기존 틀을 과감히 깰 필요가 있는데, 국내 기업들은 여전히 보수적이어서 작업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경현 성균관대 디자인대학원장은 “기업 철학을 담은 디자인이라는 것은 결국 자신만의 문화를 담는다는 의미”라며 “단순히 기업 이미지를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별 특성과 시장에 맞는 디자인으로 차별화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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