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의 2008년 첫 작품인 도니체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가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해 12월 <라보엠> 공연 도중 일어난 화재로 원래 공연장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으로 간신히 옮겼다. 라보엠> 람메르무어의>
장소가 바뀌면서 날짜도 미뤄져 오케스트라가 바뀌고, 외국에서 오기로 했던 주역 가수가 올 수 없게 됐다. 객석 수와 공연 횟수가 줄어 수입 감소도 불가피했다.
국립극장의 낮은 객석 구조 때문에 무대 경사도를 높였고, 이 때문에 실제 물을 채우기로 했던 호수는 비닐을 씌워 조명을 비추는 것으로 대체됐다. 이런 와중에 유인촌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의 이전 정권 관련 단체장 사퇴 요구 발언에 국립오페라단이 거론되면서 분위기도 뒤숭숭했다.
이런 악조건을 딛고 1일 막을 올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의 시작은 불안했다. 오케스트라와 가수들의 호흡이 맞지 않았고, 가수들도 열악한 음향 탓인지 제 기량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중반 이후 안정을 찾으면서 서서히 관객들을 몰입시켰다. 람메르무어의>
오페라의 하이라이트는 3막 2장의 ‘광란의 아리아’. 집안의 원수 에드가르도와 연인 사이인 루치아는 오빠의 계략으로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첫날 밤 남편을 죽인 뒤 미쳐버린다. 피묻은 잠옷을 풀어헤친 채 계단에서 모습을 드러낸 루치아는 군중들의 가사처럼 ‘무덤에서 걸어나오는 듯’ 했다.
1일의 루치아 박지현이 캐릭터에 어울리는 외모와 섬세한 연기력으로 부서질 것 같은 비극성을 표현했다면, 2일의 오미선은 탁월한 성악적 테크닉을 보여줬다. 20여분간 끝없이 이어지는 고음과 화려한 장식음 등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기교를 마음껏 발휘했다.
에드가르도 역의 박현재는 ‘광란의 아리아’에 이어지는 부담스러운 두 아리아를 훌륭히 소화했지만, 2일 출연한 류정필은 고음에서 힘이 달렸다.
루치아와 에드가르도는 각기 다른 곳에서 쓸쓸히 죽는다. 하지만 “죽음을 끝이 아닌 승리의 공간으로 본다”는 연출가 볼프람 메링은 루치아의 귀신이 자살한 에드가르도를 포옹하는 것으로 마무리해 두 연인을 저승에서나마 맺어줬다. 전환 없이 계단이나 커튼, 기둥 등으로 연출한 무대는 간결했고, 메링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가 내내 이어졌다.
죽음을 상징하는 무용수들과 까마귀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초반부터 루치아의 주위를 맴돌며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효과적일 때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다소 과하고 산만해보이는 장치였다.
음악 평론가 장일범씨는 “적절한 캐스팅과 미장센이 돋보이는 공연이었다. 다만 매번 유령을 등장시키는 메링의 연출은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아쉬움을 줄 듯 하다”고 말했다. 공연은 4일 막을 내린다.
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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