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분열=불치병, 한참 빗나간 '공식'
귀신 들렸다거나 미쳤다는 말로 낙인 찍었던 정신분열병의 첫 치료제인 할돌(성분명 할로페리돌)이 개발된 지 올해로 50년이다. 불치병으로 알려졌던 정신분열병 치료의 길이 열린 것이다. 최근 새로운 약이 속속 개발되면서 정신분열병은 이제 ‘고칠 수 있는 병’이 됐다. 정신건강의 날(4월 4일)을 맞아 3회에 걸쳐 정신분열병에 대해서 알아본다. 정신과학회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편견의 숫자인 4가 겹치는 4월 4일을 정신건강의 날로 정했다.
마음의 병, 고칠 수 있다
김모(21)씨는 몇개월 전부터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는 것 같아 문을 잠그고 지낸다. 가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욕하는 소리가 들리고, 주변 사람들이 자신만 쳐다보며 수근거린다고 생각돼 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정신분열병은 이처럼 망상과 환청, 위축, 의욕 상실, 생각 왜곡, 인지 장애 등을 동반한다. 우리나라 전 인구의 1%가 앓는 빈도가 높은 질환이다.
15~25세에 빈발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10년 정도 늦게 나타나지만 질병 예후는 더 좋다. 원인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유전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환경적 스트레스에 노출됐을 때 발병한다. 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돼야 이 병으로 진단한다.
이 질환은 뇌신경계 질병이다. 뇌세포 기능 이상 때문에 나타난다. 특히 뇌에서 도파민 호르몬이 정상인보다 많이 분비된다. 따라서 도파민을 억제하면 정상인처럼 생활할 수 있다. 정신분열병을 과학적으로 치료하는 약의 효시인 할돌 이후 우수한 약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 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첫 발병 후 1~2년 동안 꾸준히 약을 먹으면 당뇨병, 고혈압 환자처럼 문제없이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재발이 문제이지만 약을 꾸준히 먹음으로써 재발 위험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1세대 약 - 도파민 차단
정신분열병은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너무 많이 생성되는 것이 특징이다. 도파민이 정상보다 많이 분비되면 환청과 망상이 생긴다. 할돌은 이 도파민을 차단한다. 그 전에는 들뜬 환자를 재우거나 진정시키는 것이 치료의 전부였다.
할돌 개발로 수용시설에서만 생활할 수 있었던 환자가 깨어 있어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가족과도 생활할 수 있게 됐다.
할돌 이후에 더 개선된 약이 나오면서 일상생활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환자가 일반인처럼 활기차게 대화하고 웃으면서 지내도록 해주지는 못했다. 그리고 노인처럼 종종걸음을 걷거나 몸이 굳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2세대 약 - 대화와 웃음 찾아줘
1990년대 들어 1세대 약의 단점이 해결되기 시작했다. 할돌 개발자인 폴 얀센 박사가 리스페달(성분명 리스페리돈)을 개발했다. 이 약은 도파민 뿐만 아니라 감정에 영향을 주는 세로토닌에도 작용한다. 이 약 때문에 입을 닫고 표정이 굳어있던 환자가 가족과 대화하고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로토닌이 도파민 억제를 도와 운동장애를 확실히 개선했다. 리스페달을 시작으로 세로토닌 등 다른 신경전달물질의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고 부작용을 줄인 2세대 치료제가 많이 나왔다.
2세대 약은 음성증상이라고 불리는 환자의 무감정, 사회성 결여 등을 고치는데 획기적인 효과를 보였다. 환자는 난동을 부리지 않을 뿐 아니라 흔히 영화 등에서 어눌하거나 멍한 눈으로 창 밖을 쳐다보는 것으로 표현되는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발전하는 약 - 재발 방지, 친절한 제형
2세대 약은 그럼에도 여전히 몸무게 증가, 당뇨병 등의 부작용이 있었다. 한국 출시를 앞둔 인베가(성분명 팔리페리돈)는 혈중 약물농도를 24시간 일정하게 조절, 효과가 빠르고 안전성도 뛰어나다.
기존 약은 혈중 농도가 들쭉날쭉해 부작용의 가능성 때문에 필요한 양을 처음부터 먹지 못해 효과가 느리다. 인베가는 혈중 농도를 일정하게 하는 오로스(OROS) 기술을 사용, 부작용이 없도록 처음부터 유효용량을 복용하게 해 빠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최근에는 먹는 불편함을 개선한 약도 많이 나왔다. 서울대병원 정신과 김용식 교수는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도 시간을 지키면서 평생 동안 하루 두 번 초콜릿을 먹는 것이 쉽지 않다”며 약 복용의 불편함을 설명했다. 만성질환 대부분이 약을 거르지 말아야 하지만 정신분열병은 특히 약을 안 먹으면 재발하므로 거르지 말아야 한다.
장기 지속형 주사인 리스페달 콘서타는 2주에 한 번 병원에서 맞으면 된다. 약 복용의 불편함을 던 대표적 약이다. 올란자핀과 팔리페리돈 약도 한 달에 한 번 맞는 주사제를 준비 중이다. 이밖에 물 없이 입 안에 넣으면 녹는 약, 물이나 음료수에 타 먹는 약도 나왔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유범희 교수는 “이르면 5년 후에는 각 개인의 유전자를 파악해 약물의 효과와 부작용을 예측, 가장 적합한 약물을 사용하는 맞춤형 치료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트레스 관리도 중요
약도 중요하지만 스트레스 관리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스트레스가 병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악화시키는 결정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과로, 가족 내 긴장 등은 병 재발 원인이 될 수 있다. 신앙생활이나 운동으로 환자 스스로 스트레스를 관리하면 재발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
권대익 기자 dkwon@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