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 약세로 ‘아메리칸 드림’도 깨지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이주 노동자들이 미 달러가치 하락으로 고향으로 송금하는 돈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자 유럽연합(EU), 캐나다, 호주 등지로 일터를 옮기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일 보도했다. 브라질 페소의 경우 달러 대비 가치가 최근 5년간 거의 2배나 상승하는 등 개도국 통화 대비 달러의 약세가 장기화하면서 미국 내 이주 노동자들의 고향 송금액이 갈수록 감소하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이 최근 집계한 국제 송금추이를 보면 4년 전까지만 해도 중미와 안데스산맥 지역 국가로 송금되는 전체 외화 중 미국에서 보내는 돈이 90% 이상을 차지했으나, 지난해 말에는 80%선까지 그 비중이 줄어들었다. 미국인들이 기피하는 3D업종(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일)을 주로 맡아오던 중남미 출신 이주노동자의 송금액이 달러의 약세로 감소하는 데다, 유럽 등지로 일터를 옮기면서 타국으로부터의 송금 비중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EU지역 중에도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비자 없이도 남미 노동자의 입국이 가능해 새로운 이주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세계은행 이주ㆍ송금 부서 책임자인 딜립 라타는 “방글라데시, 네팔, 필리핀 등 서남아시아 국가의 노동자들도 달러 대비 통화 강세 국가로 이주지를 바꾸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 경향은 의사, 간호사, 정보기술(IT) 전문가 등 숙련 노동자에게서 더 두드러진다”고 밝혔다.
미국으로부터의 송금액 감소는 개도국 경제에도 큰 충격을 미치고 있다. 이주 노동자가 인구 8명당 1명에 달해 이들의 송금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인 브라질의 소도시 고베르나도르 발라다레스시의 경우 30만~40만명의 이주노동자가 미국으로부터 송금하는 액수가 최근 1년간 6,800만 달러나 감소했다. 이에 따라 이 지역 부동산가격도 폭락했고, 여행사 등 이주 노동자 관련 산업도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최근 수개월간 미국에서 고베르나도르 발라다레스시로 돌아온 이주노동자가 3,000명에 달한다. 이 지역 사회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귀국 노동자의 절반 가량이 ‘무일푼’으로 귀국했다. 미국으로 불법 입국하기위해 범죄조직 등에 지불한 돈이 통상 1만 달러 정도인데, 미국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수년간 열심히 일해도 ‘투자 원금’도 회복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미국 보스턴 지역의 한 도넛 가게에서 부부가 교대 근무해오던 이 도시출신 이주 노동자는 “2006년 경기침체가 본격화하면서 손님들이 팁으로 주던 잔돈을 챙기기 시작했다”며 “이후 물가가 치솟고, 미 달러 약세가 진행되면서 도저히 고향의 가족들에게 돈을 송금할 수 없어 6년간의 이주 노동생활을 접고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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