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팩션(Faction)이라는 단어가 매스컴에서 종종 사용되고 있다. 팩션은 fact(사실)와 fiction(허구)이라는 반대 개념을 지닌 두 단어의 합성어이다. 에듀테인먼트(Education+entertainment), 인포테인먼트(Information+Entertainment), 다큐테인먼트(documentary+entertainment)도 유사한 형식의 합성어이다.
이러한 합성어는 소위 디지털 다매체 시대에 시청자의 감성과 재미, 오락 중심의 가치가 중요시 되는 콘텐츠 트렌드를 반영한 방송사의 전략적 선택이다. 보도와 오락, 허구와 사실, 교육과 오락이라는 결합하기에는 너무나 다른 개념들의 만남은 가벼움 속에 정보를 추구하는 수용자의 감성을 자극한다.
특히 사극이 지상파 방송의 전략적인 콘텐츠로 제 2의 전성기를 누리는 현재, 팩션은 중요한 서술 방식이기도 하고 또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주몽> , <왕과 나> , <이산> , <태왕사신기> 등의 프로그램이 팩션으로 분류되고 있다. 방송사의 사극 이전에 영화, 소설 등의 드라마 장르에서도 사실과 허구를 혼합한 시도가 있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 <푸코의 진자> 와 최근의 <다빈치 코드> 가 대표적인 시도이다. 국내에서도 <영원한 제국> , <건축무한육면체의 비밀> 등의 시도가 있었다. 건축무한육면체의> 영원한> 다빈치> 푸코의> 장미의> 태왕사신기> 이산> 왕과> 주몽>
10여년 전만 해도 사극의 팩션 형식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컸었다. 당시의 사극을 비판했던 사람들이 현재의 팩션 형식의 사극을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지난 주 KBS에서 종영한 <쾌도 홍길동> 에 홍길동(강지환)과 허이녹(성유리) 그리고 그 패거리들이 입고 있는 의상은 확실히 현대적 감각의 디자인이다. 선글라스를 쓰고 후드 더플코트를 입은 활빈당원들의 모습에서 조선시대를 발견할 수 없다. 중요한 사실은 아무도 그들의 의상에 대해 비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쾌도>
‘사실(fact)’의 무게에서 벗어나버린 디지털 시대의 스토리텔링 방식이 팩션 형식의 사극에서 대표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사실과 허구의 이분법적 구분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시대가 된 것이다.
드라마 세계에서 창조된 새로운 공간에 여러 시간과 공간이 혼재하는 공간 지형적 모험을 수행하는 주인공의 일대기가 디지털 시대의 드라마 형식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드라마 형식이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의 유형이라면 디지털 시대의 팩션은 오디세이적 공간 여행을 꿈꾸는 시청자를 위한 새로운 형태의 엔터테인먼트 방식이다. 잃어버린>
시청자들은 팩션 공간에서 마치 게임을 하듯 주인공의 여로를 경험한다. 이 과정에서 역사적 사실은 드라마를 위한 하나의 정보일 뿐 그것이 핵심 요소가 되지 못한다.
얼마 전부터 MBC의 대표적 오락프로그램인 <일요일일요일 밤에> 에서 ‘우리 결혼했어요’란 코너를 시작했다. 연예인들이 가상의 신혼부부가 되어 겪는 일상을 담는 이 코너에서 출연자들은 너무나 스스럼없이 신혼부부를 연기한다. 일요일일요일>
이 과정에서 출연자의 현실영역과 가상영역은 서로 겹쳐지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공간을 창조한다. 이 공간은 결혼생활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시청자나 이미 신혼생활을 경험한 시청자들을 위해 새롭게 창조된 공간이다.
이 공간이 이전의 오락프로그램보다 흥미로운 것은 연예인의 실제의 현실영역(fact)과 신혼부부라는 가상영역(fiction)이 융합 되면서 새로운 팩션의 공간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디지털시대에 미디어 수용자는 인터넷과 영화, 드라마, 연극 등을 통해 팩션의 공간을 유영하는 오디세이가 된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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