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인다. 잘 만 하면 국책은행 민영화와 국내 금융을 대표하는 키 플레이어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이 지난달 31일 금융위원회 대통령 업무 보고를 통해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다시 탄력을 받고 있는 ‘메가뱅크’ 구상 얘기다. 산업은행 우리금융지주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각각 개별적으로 민영화하는 대신 하나로 묶어 ‘매머드 은행’을 만든 뒤, 통째로 매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은 현실과 상당한 괴리가 있다. 기대와 달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칠 수 있다는 우려의 소리도 높다. 전문가들은 전형적인 탁상공론이자, 정부가 시장을 만들어가겠다는 관료적 사고라고까지 몰아세운다. 과연 메가뱅크 방안이 실효성이 있는 것일까.
■ 하나. 시너지 효과가 없다
메가뱅크 구상은 ‘대형화=글로벌 경쟁력’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산업은행만 별도 민영화하면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없다. 메가뱅크 정도는 돼야 제대로 겨뤄볼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정부가 대형화를 주도하겠다는 발상이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프랑스 공공 금융기관(CDC) 등 정부가 지분을 계속 보유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전세계 어디에서도 정부 주도의 대형화가 성공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사실 대형은행 탄생에 대한 정부의 집착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환란 직후 금융구조조정과정에서도 상업 한일 조흥 등 부실은행을 통폐합해 초대형은행을 만들겠다는 ‘슈퍼뱅크’ 방안이 정부에 의해 추진됐다. 한 금융계 인사는 “부실은행 대신 국책은행으로 대상만 바뀌었을 뿐 이번 메가뱅크 구상은 10년전 슈퍼뱅크의 재림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덩치가 커진다고 시너지 효과가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은행권의 또다른 관계자는 “대기업ㆍ직접 금융 중심의 산업은행과 중소기업ㆍ간접 금융 중심의 기업은행 결합은 나름대로 보완효과를 가질 수 있다”며 “하지만 우리금융과 통합은 중복 요소가 많아 특색 없는 대형 은행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위 고위관계자도 “경쟁력 있는 대형은행은 (정부가 억지로 짝을 지어주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자발적 M&A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둘. 메가권력이 시장 질서 해친다
우리금융지주(자산 287조원) 산업은행(140조원) 기업은행(124조원)이 합쳐지는 메가뱅크는 자산 500조원이 넘는 공룡 국책은행이다. 국내 1위 국민은행(232조원)의 두 배를 훨씬 넘는다. 민영화에 앞서, 정부 우산 아래서 시장을 송두리째 잠식할 수 있는 규모다. 맘만 먹으면 정부는 메가뱅크를 통해 시장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
메가뱅크가 시중은행의 자발적 인수ㆍ합병(M&A)을 촉진할 수도 있다지만, 그러기엔 시중은행들의 힘이 너무 부쳐 보인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엄청난 시장지배력을 지닌 대형 은행의 탄생을 정부가 주도한다는 것은 경쟁정책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은 얘기”라고 지적했다.
■ 셋. 민영화 현실성도 없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반드시 규모가 크다고 매각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쟁력이 있으니까 더 잘 팔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박병원 우리금융회장도 “삼성전자가 덩치가 크다고 살 사람이 없겠느냐”고 반문한다.
맞는 말일 수 있지만 문제는 막대한 인수 자금이다. 당장 우리금융 하나도 매각에 난항을 겪는 마당에 수십조원을 들여 메가뱅크를 인수할 여력이 있는 곳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대형 국책은행을 외국자본에 넘길 수도 없고, 재벌에 넘기는 것도 역풍과 부작용이 만만찮다. 국민연금이 현실적인 대안이지만, 실질적 민영화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김동환 연구위원은 “자산 500조원이 넘는 대형은행을 인수할 국내 자본은 거의 없어 보인다”며 “메가뱅크가 탄생하면 민영화 시기는 무한정 늦춰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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