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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잠들지 않는 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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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잠들지 않는 남도

입력
2008.04.02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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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ㆍ3사건이 오늘로 60주년을 맞았다. 올해는 또 건국 60돌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이 남녘 섬의 피비린내와 함께 태어났다는 뜻이다. 실제로 4ㆍ3사건의 공식 맥락은 남한만의 단독선거(5ㆍ10선거)와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민의였다. 그 민의는 너끈히 이해할 만한 것이다. 해방 뒤 두 해 남짓은 분단을 실감하기엔 너무 짧은 세월이었을 테고, 단일정부를 세우는 것은 그 시기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당연지사로 받아들여졌을 테다. 돌이켜보는 자의 지혜에 기대어 두 세대 전 민의를 어리석다고만 여길 수는 없다.

60년 전 오늘 시작된 제주도 봉기는 무자비한 진압 속에서 수만 명의 희생자를 내고 한 해 뒤에야 잦아들었고, 그 여진은 6ㆍ25전쟁 중에도 이어져 제주도는 1954년 들어서야 평온을 되찾았다. 건국을 피로 물들인 4ㆍ3은 오래도록 입에 올려서는 안 될 금기담이었다. 그것은 오직 귀엣말이어야만 했다. 제주 출신 작가 현기영은 박정희 정권 끝머리였던 1978년 이 사건을 건드린 중편 <순이삼촌> 을 발표했다가 모진 고초를 겪은 바 있다.

그러나 진압 과정이 워낙 잔혹했고 희생자 규모가 워낙 컸던 터라, 4ㆍ3은 국가 주도의 이념 사냥 속에서도 신원(伸寃)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었다. 1987년 6월항쟁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기지개를 켜면서, 4ㆍ3은 비로소 귀엣말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가수 안치환이 그 해에 만든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 는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녘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라며 4ㆍ3을 기렸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말 국회는 4ㆍ3특별법을 제정해 국가 차원에서 이 사건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킬 밑자리를 마련했고, 2003년 10월31일 당시 대통령 노무현은 제주도를 방문해 ‘많은 사람을 무고하게 희생시킨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지난해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이긴 뒤, 4ㆍ3을 다시 역사의 다락에 처박으려는 움직임이 우리 사회 한 켠에서 일고 있다. 특별법에 따라 2000년 출범한 제주 4ㆍ3위원회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나라당에서 나온 데 이어, 일부 보수단체가 정부의 4ㆍ3진상조사보고서를 허위라 비난하고, 4ㆍ3평화공원을 ‘폭도공원’이라 조롱하며 공원 안의 평화기념관 개관을 뒤로 미루라 요구하기도 했다.

소위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 포럼이 대안교과서라며 최근 내놓은 <한국 근현대사> 도 4ㆍ3사건을 좌파세력의 무장반란이라 규정했다.

<한국 근현대사> 의 4ㆍ3 규정에는 일리가 있다. 4ㆍ3의 한 측면은 분명히 그 시절 좌파라 여겨졌던 세력의 반란이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것이 오로지 좌파의 반란만은 아니었던 것도 엄연하다. 4ㆍ3의 성격은 복합적이다. 그것은 외세에 맞선 민족항쟁이기도 했고, 민중의 권리를 펼치려는 민주주의의 싸움이기도 했다.

또 은밀히는, 육지세력에 대한 토착세력의 저항이기도 했다. 민중봉기의 불을 댕긴 것이 미군정청을 등에 업은 서북 출신 관민합작 진압부대의 과격한 폭력이었다는 점은 4ㆍ3의 이런 복합적 성격을 한 자락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4ㆍ3은 6ㆍ25전쟁 앞뒤로 대한민국 국가가 저지른 민간인 학살 가운데 두드러진 것이었다. 그것에 대해 대한민국 대통령이 사과한 것은 전적으로 정당하다.

프랑스 부르봉 왕가가 보기에 18~19세기 시민봉기들은 좌파의 반란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 프랑스인들은 그 반란을 제 역사로 보듬는다. 4ㆍ3도 한국인들에게 그리 받아들여져야 하리라. 대한민국은 우파만의 나라도 아니고 좌파만의 나라도 아니다. 우파와 좌파가, 그 사이와 그 너머의 온갖 파가 다 대한민국이다.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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