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대구 서구 서구시장. 상인들의 관심은 한나라당 이종현 후보도, 친박연대 홍사덕 후보도 아니었다. '박근혜'였다.
"정권 잡았다고 한 달 만에 내쳐버리고 말이다. 우리 박근혜 불쌍해서 어쩌나" "그러니까 홍사덕이를 찍어야 한다. 박근혜 지켜 준다 안 하나" "박근혜는 기호 2번이고 홍사덕은 6번이다. 진짜 박근혜를 위한다 하면 2번에 몰표를 줘야 한다" "홍사덕이 한나라당 후보 아니었나?"
'홍 후보와 대구의 대주주인 박근혜 전 대표' 대 '이 후보와 서구에서 5선을 하고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강재섭 대표'의 복잡한 구도 속에서 유권자들은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박풍(朴風)의 위력이 열흘 전 한나라당 공천 파동 때보다 약해진 것은 분명해 보였다. "박풍이 반풍(半風)이 됐다. 우리 후보가 박 전 대표와 식사하는 사진이라도 찍어 와 뿌려야 할 판"이라고 홍 후보 측도 털어 놓았다.
그 결과, 판세가 홍 후보 우세에서 일주일 만에 초접전으로 바뀌었다. 여론조사에서 두 후보는 오차 범위 안에서 엎치락뒤치락 승부를 하고 있다.
'박근혜' 이슈를 밀어내고 있는 건 '경제'였다. 서구는 1980년대 서대구공단과 염색공단으로 호황을 누렸지만 어느새 대구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이 됐다. 그래서 경제 발전에 대한 기대가 유독 높다.
이 후보 측은 "'박근혜가 밥 먹여 주나'하는 현실론이 힘을 얻고 있다"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집권당 프리미엄'이 무조건 먹히는 것도 아니다.
이날 오후 4시 이 후보의 신평리시장 유세장. 상인들은 한나라당에 대한 애증을 품고 있었다. "한나라당 백 번 찍어 준 결과가 겨우 이 꼴 아이가." "미우나 고우나 한나라당이다.
이제 여당도 됐고 대통령이 일도 열심히 한다 안 하나." 강재섭 대표도 인심을 많이 잃은 듯 했다. 서구 경제가 내리막길을 걸은 지난 20년 간 지역 국회의원을 지낸 탓이다.
"저는 강재섭처럼 하지 않겠습니다." 이 후보는 유세를 마치고 시장을 누비며 이렇게 다짐했다. 지역구를 물려 준 초ㆍ중ㆍ고교 1년 선배를 공개적으로 손가락질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었다.
이 후보는 "워낙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에 '나는 정치 관심 없다. 지역에 엎어져서 살겠다'고 해야 믿어 준다"고 했다. 그는 유세 때마다 "박 전 대표를 팔아 금배지 주운 뒤 서울로 날아가 버릴 사람이 좋으면 홍 후보를 찍으시라"고 소리를 높였다.
홍 후보는 '경제를 살릴 힘이 있는 거물론'으로 맞섰다. 오후 4시30분 중평시장에서 홍 후보는 상인들과 악수하며 똑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제가 홍사덕입니다. 제가 일을 아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홍 후보는 판세가 박빙이 된 이후엔 "박근혜당 후보입니다" 같은 말을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전 11시께 감삼동 노인 무료급식센터. 10분 간격으로 두 후보가 연이어 나타났다. 이 후보는 악수를 청했다가 거절 당하면 금세 얼굴이 빨개졌다. '정치 신인' 티가 확 났다.
이어 등장한 홍 후보는 노인 100여 명을 일일이 포옹했다. "이렇게 예쁘게 하고 나오셨어요" "염색을 하시면 훨씬 젊어 보이실 거예요" 같은 말로 할머니들을 사로잡은 그는 영락 없는 '스타일리스트 정치 프로'였다.
두 사람을 모두 지켜 본 한 남성 유권자는 "홍사덕이 역시 경험도 많고 똑똑데이. 당선되면 한나라당에 다시 들어 간다고 하니 밀어 주자"며 홍 후보 편을 들었다. 옆에 서 있던 여성 유권자가 발끈했다. "홍사덕이 언제부터 대구 사람이었나. 50년 넘게 대구에 산 토박이 이종현이 우리 맘을 잘 알지 않겠나."
대구=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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