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발 5개년계획(2차)이 한창이던 1968년 4월 1일. 박태준 포항제철(포스코의 전신) 사장은 허허벌판이던 영일만 한복판에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라고 씌여진 현판을 내걸었다. ‘제철보국’(철강을 만들어 나라를 위한다)을 향한 대장정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꼭 40년이 지난 2008년 4월 1일 오전 10시, 그 곳에 다시 선 박태준 명예회장은 ‘창립 40주년 기념식’ 인사말을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찰나처럼 지나버린 40년에 대한 아쉬움일까, 아니면 비로소 제철보국의 한을 이뤘다는 벅찬 감격 때문일까. 그의 머리에는 포스코 영욕의 40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누구도 감히 도전하지 못했던 종합제철소 건설이었기에 포스코 성공은 ‘영일만의 기적’이라 불린다. 40년이 지난 지금 포스코는 조강생산 3,110만톤, 매출액(연결기준) 32조원, 영업이익 4조9,000억원의 한국 대표기업으로 성장했다.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불린 글로벌 철강기업 아르셀로 미탈에 이어 일본의 신일본제철, JFE와 함께 세계 2위의 철강 기업이지만 기술과 품질 면에서는 누가 뭐래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포스코가 창립 40주년을 맞은 이 날 발표한 향후 10년 뒤의 비전은 ‘글로벌 빅3, 톱3’.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급변하는 세계 철강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강한 체질의 철강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구체적 목표는 연결매출 100조원, 연간 조강생산량 5,000톤이다. ‘매출 100조원 클럽’은 국내 재벌그룹 가운데 삼성그룹만이 지난해 도달한 ‘꿈의 고지’다. 연간 조강생산 5,000톤은 문어발식 확장을 한 아르셀로 미탈을 제외하고는 세계 어떤 철강업체도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는 전인미답의 영역이다.
포스코의 탄생 배경은 한국 근대화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 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는 비아냥을 듣던 1960년대 국내 경제 현실은 정치보다 더욱 참담했다. 세계 최빈국에서 ‘공업화의 완결판’이라는 일관제철소를 짓는다는 것은 허황된 꿈이었다.
무엇보다 건설에 필요한 1억 달러 이상의 막대한 외화자금을 구하는 게 문제였다. 결국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보상으로 일본이 내놓은 대일청구권 자금 가운데 7,370만 달러와 일본수출입은행의 상업차관 5,000만 달러 등 1억2,370만 달러 조달에 성공해 제철소 건설에 들어갔다.
일제에 희생된 선조들의 피와 땀으로 지어진 제철소라는 점에서 박태준 당시 사장 등 초기 포철 멤버들의 각오는 남달랐다. 박 사장은 ‘사막의 여우’로 불렸던 독일 장군의 이름을 딴 건설본부 ‘롬멜 하우스’에서 밤낮 없이 건설요원들을 독려하며 “실패하면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므로 우리 모두 (바다쪽으로) 우향우해서 영일만에 빠져 죽자”고 비장한 각오를 다지곤 했다.
포스코가 40년 만에 이뤄낸 외형적 성장은 놀라울 정도다. 창립 당시 16억원에 불과하던 자산 규모는 지난해 30조4,928억원으로 2만배 가까이 늘었다. 포철 1기가 가동된 1973년 416억원이었던 매출액은 지난해 22조2,000억원으로 530배 이상 증가했다.
포스코가 지난 40년간 생산한 철강재는 후판 6,925만톤, 열연 2억1,376만톤, 냉연 1억3,384만톤, 선재 3,936만톤, 스테인리스 1,941만톤 등 총 5억5,085만톤에 이른다. 중형차 5억8,00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민영화되기 직전인 1999년 말 12조600억원이었던 포스코의 기업가치는 지난해말 50조1,000억원으로 4배 이상 늘었다.
포스코가 앞으로 가야할 길은 가시밭길이다. 베트남, 인도에서의 일관제철소 건립 프로젝트가 예상과 달리 추진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 또 글로벌 합종연횡으로 인한 거대 기업과의 무한경쟁, 중국 등 후발 기업들의 추격, 원자재가격 급등 등 대내외적인 상황도 녹록지 않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목표가 분명하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해지면 어떤 난관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포스코 40년의 역사가 가르쳐 주고있다”며 “혼연일체가 돼 한 방향으로 매진 한다면 영속기업으로서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항=유인호 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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