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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김하중 장관의 영혼

입력
2008.04.0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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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매파인 남주홍 교수가 낙마한 통일부장관 자리에 김하중 주중대사가 발탁됐을 때 햇볕정책 진영은 내심 안도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 DJ의 햇볕정책을 뒷받침하고, 이어 6년 반이나 주중대사로 재직하면서 대북포용정책 노선과의 조화 속에 한중관계를 이끌어왔던 그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회 인사청문회 때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그의 전력을 질타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에 맞서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중에서 가장 잘된 인사"라며 감쌌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지난 주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서 '반성문'을 읽었다. "지난날 통일부가 국민의 소리를 경청하지 않고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우려를 자아냈으며, 그런 비판과 우려에 깊은 책임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업무보고에서는 6ㆍ15공동성명과 10ㆍ4정상선언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그보다 1주일 앞서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김 장관은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사업을 확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 개성공단 내 남북경협사무소 남측 당국자 추방을 필두로 해서 어제 이 대통령을 '역도'라고 비난하기에 이른 북측 강경 반발의 시발이었다. 남북관계를 10년 전으로 되돌리는 심각한 사태의 중심에 김 장관이 위치한 셈이다.

남북관계 파탄의 '중심'으로

대통령직인수위 시절 "우리는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라는 국정홍보처 간부의 볼멘 소리가 회자된 적이 있다. 김 장관도 이명박 정부의 각료가 된 이상 자기 정체성의 영혼은 잠시 빼놓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이 정부 고위직에 몸 담고 있는 인사가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방향에 거스르는 얘기를 한다면 영이 안 서는 콩가루 정부다. 그런 점에서 김 장관이 대통령의 코드에 충실한 입장을 취한다고 해서 비난만 할 일은 아니다.

물론 정도의 문제는 있다. 그렇게 통렬하게 반성할 정도로 통일부가 잘못했는지, 앞선 정부의 대북정책들이 공은 전혀 없고 오로지 과만 있었다고 해야 했을까. 개성공단 확대문제도 그렇다. 굳이 핵 문제가 해결 안 되면 개성공단사업을 확대하기 어렵다고 할 게 아니라 "핵 문제가 해결되면 확대할 수 있다"고 '외교적'으로 말할 수도 있었다.

김 장관은 장관 취임을 위해 베이징을 떠나기 전 한국 특파원단과의 간담회를 갖고, 6ㆍ15 남북공동선언 당시 평양에서 "북한과 우리 동포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던" 일화를 소개했다고 한다. "북한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남북관계 문제를 풀어나가겠다"고도 했다고 한다.

독실한 기독교인 그는 지금 시기에 자신을 통일부장관 자리에 앉힌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고 있을 법도 하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햇볕정책의 전도사 역을 자임했던 그가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와는 대북 인식과 철학이 판이한 이명박 정부의 초대 통일부 장관으로서 할 역할이 분명 있을 것이다.

빼놓은 영혼을 되돌아 봐야

이 대통령과 그 참모들은 앞선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대북정책을 인정하지도 않지만 진짜 모습을 알지도 못한다. 햇볕정책과 평화번영정책이 모두 옳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거기에도 오류가 적지 않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까지의 대결적 대북정책 반성 위에 한반도평화 정착과 공동 번영의 길로 가기 위해 쏟아 부은 노력의 결정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많은 국민의 성원과 지지 속에 이뤄진 것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가 바로 이 긍정적 성과까지 부인해 버리니 현실적으로 선택할 정책이 없다. 이 정부 하에서 남북관계의 연착륙과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김 장관의 역할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은 물론 이를 직ㆍ간접적으로 지원하는 학자들도 남북관계의 현실보다는 반북 정서와 대책 없는 강경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강경하게 나간다고 김정일 집단이 달라질 것 같은가. 그것을 기대하는 것은 요행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그런 요행수와 미망에서 깨어나 현실을 보도록 하는 데 김 장관의 사명과 역할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잠시 빼놓았던 영혼을 되돌아보는 게 먼저이다.

이계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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