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혁명의 종식과 함께 중국의 최고실력자로 컴백한 덩샤오핑이 1978년 개혁개방 정책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던 중 기미츠제철소에 들렀다. 여기서 이나야마 요시히로 당시 신일철 회장을 만나 대뜸 “중국에도 포항제철과 같은 제철소를 하나 지어달라”고 요청했다. 돌아온 대답은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이 일화는 6년 전 포스코로 이름을 바꾼 포항제철과 박태준 명예회장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다. 중국이 세계 철강계의 강자로 부상하는 데 ‘박태준 연구’가 주요한 밑거름이 돼서다.
▦ 박 명예회장은 얼마 전 언론 인터뷰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제철입국 집념과 이나야마 회장의 전폭적 지원이 없었으면 오늘의 포철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계속되는 박 명예회장의 회고. 포철이 1기설비 착공 3년여 만에 73년 6월 103톤 규모의 고로를 완공, 첫 쇳물을 뽑아내자 일본 철강업계에서 “한국에 너무 많은 기술과 정보를 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무성했다.
이에 이나야마 회장은 “많이 가르쳐준 게 문제가 아니라 배우는 사람들의 의지와 열정이 너무 강했던 거야. 우리 잘못이 아니라 그 쪽이 워낙 잘했던 거지”라고 잘랐다.
▦ 그러나 이것은 단지 시작이었다. 종합제철소가 조국근대화의 초석이라는 국가적 비전 아래 영일만 황무지에서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가 출범한 것은 68년 4월 1일. 돈도 기술도 경험도 없었지만, 당시 대한중석 사장이었던 박 명예회장을 비롯한 34명 창설요원들의 열의와 창의는 어떤 시련과 장벽도 뛰어넘을 수 있는 저력이 됐다.
그로부터 40년. 포스코는 조강생산량이 연 3,280만 톤에 달하는 세계 2위권의 글로벌 철강회사로 컸다. 외국인 지분이 49%에 이르고,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4조5,000억원, 4조7,500억원을 기록했다.
▦ 어제 포스코는 10년 후 글로벌 매출 100조원과 생산량 5,000만톤을 달성하겠다는 ‘비전 2018’ 선포식을 가졌다. ‘영일만의 결의’를 다졌던 ‘34인의 철사(鐵士)’ 가운데 생존해 있는 21명의 감회는 더욱 남달랐다.
이들을 대표한 박 명예회장은 “포스코 40년이 한국 근대화 40년”이라는 긍지를 주문하고, 또 다른 40년을 준비하는 포스코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일깨웠다. “실패하면 모두 영일만에 빠져죽자”는 초창기 ‘우향우 정신’이면 철강석 등 원재료 확보, 철강계의 M&A 붐, 파이넥스 등 새 공법의 상용화 과제를 이겨낼 수 있다는 격려일 게다.
이유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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