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현장에는 체포전담반까지 내보내는 기세등등한 경찰.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와 여성 보호에도 그렇게 기세등등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김모 씨)
“낯선 산에서 산짐승보다 같이 있는, 의지해야 할 사람이 더 무서워진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제 피의자보다 경찰이 더 무서워 보여요.”(서모 씨)
경찰의 일산 초등생 폭행ㆍ납치미수 사건 부실ㆍ늑장 대처 소식을 접한 시민들이 31일 경찰청 홈페이지에 남긴 1만여 개의 글에는 분노를 뛰어 넘은 서글픔이 잔뜩 묻어 나왔다.
경찰 안팎에서는 이번 사건이 “경찰의 총체적 부실을 낱낱이 드러낸 케이스”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민 안전보다 정권 눈치 보기에 급급한 지휘부, 발 대신 입으로 뛰는 현장 경찰, 부실한 상부보고 및 공조수사 시스템 등이 빚어낸 결과라는 것이다.
■ 민생치안보다 정권 입맛 맞추기 급급
어청수 경찰청장은 2월 취임 직후부터 ‘불법 폭력 시위ㆍ집회 엄단’을 거듭 강조해왔다.불법 집회 참가자는 훈방 없이 즉결 심판하고 체포전담반을 만들어 현장에 투입하겠다는 대책까지 발표했다.
심지어 26일에는 경찰청 예산을 들여 ‘경제를 살리려면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주제의 세미나까지 열었다. 반면 같은 날 발표한 ‘어린이 납치ㆍ유괴를 막기 위한 종합대책’은 실효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인권 및 사생활 침해(모든 휴대폰 GPS 설치 의무화 등) 논란만 불러일으켰다.
이를 두고 경찰 주변에서는 지휘부가 ‘법과 질서 확립’을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코드 맞추기에만 지나치게 신경 쓴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더구나 어 청장은 사안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한 탓인지 이명박 대통령이 이날 오전 경찰을 강하게 질책한 뒤인 오전 11시 넘어서야 전국 지방청장 긴급 화상회의를 열었다. 어 청장은 또 이 대통령이 일산서를 전격 방문한 시각(오후 2시30분께)보다 한참 뒤인 오후 4시에야 일산서를 방문했다.
■ 일선 현장은 앉은뱅이 수사에 급급
이번 사건의 1차적 책임은 무사안일과 근무기강 해이, 사건을 잘못 판단한 현장 경찰관 등에 있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경찰 수사시스템 역시 허술하다는 지적이다.
서울의 한 지구대 소속 경찰관은 “무슨 일이 터지면 경찰서가 아닌 지구대의 초기 대응 잘못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많다”며“그러다 보니 현장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제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휘부가 바뀐 뒤 현장 인원을 늘렸다지만 우리 지구대에는 변화가 없다”며 “그런데도 생활사범 특별단속, 아동 대상 범죄 집중 단속 등으로 눈코 뜰 새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일선 경찰서 폭력팀 소속 형사는 “초기 사건 수사는 아무리 그 내용이 부실하다 해도 지구대가 올린 1차 보고서 내용에 의지해야 한다”며 “매일 형사 2명이 밤새 접수된 사건을 처리 하기 때문에 서류만 보고 하는 앉은뱅이 수사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게다가 사건 발생일을 기준으로 사건을 배당하는 시스템이어서 이번 사건처럼 사건이 며칠 동안 묵혀 있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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