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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예기자 1호 정홍택의 지금은 말할 수 있다] <2> 정홍택, 60년대 최고 간행물 '주간한국'에 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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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예기자 1호 정홍택의 지금은 말할 수 있다] <2> 정홍택, 60년대 최고 간행물 '주간한국'에 터전

입력
2008.03.3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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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주간한국> 으로 오라고 김성우, 이명원 선배들이 말한 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말이 아니라 유혹이었다. 이리저리 피해 다니다가 두 손 든 것을 보면 나한테도 딴따라 ‘끼’가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58년과 59년경에 말도 안 되는 연예칼럼을 잡지에 몇 번 쓴 적이 있고, 사회부, 외신부로 가기 전에 문화부에서 가요디스크 소개와 방송평 같은 것을 ?㎢募?것 때문에 나보고, “대한민국 최초의 본격적인 연예 전담기자”를 하라는 것이었다.

이른바 개척을 하라는 말이다. 연예 전담 기자, 이상하게 거부감이 없이 그럴 듯하게 다가 왔다. 심지어 멋져 보이기 까지 했다. 수 많은 스타들을 맘 대로 만날 수 있고, 사진도 찍고, 내가 쓴 글로 인해서 인기가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고.

더구나 선배들은 “지금은 연예계가 시장이 크지 못 하지만 앞으로는 엄청난 생산력을 같게 될 것이라”고 설명 해 주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TV가 영향력이 별로 크지 않기 때문에 활자 매체가 엄청 재미 있을 것이라며 나를 설득했다. 지금 보니까 선배들이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그 양반들은 연예부 기자하다가 나중에라도 정치부로 갈수 있다고 말했다. 어쨌든 그때나 지금이나, 호기심이라면 하늘을 찌르는 내 성격 때문에, 나는 그 유혹에 간단히 넘어 가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나는 정치부 기자의 꿈(?)을 과감하게 내 던지고 연예기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주간한국> 이 내 터전이 되었고, 김성우 선배가 나를 연예기자 1호로 만든 주인공이다.

여기서 ‘연예계’라는 말을 쓰게 된 사연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영화계, 연극계라는 말을 쓰고 있을 때, 가요라든가, 방송이라든가, 만화라든가, 또는 극장 쑈(그때는 쇼라고 하지 않고 쑈 라고 했음)라든가 하는 장르를 어떻게 호칭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을 했다. 일본은 이것을 예능계, 즉 ‘게이노 까이’라고 한다. 우리는 일본하고 차별할 필요도 있고 해서, 연예계라고 부르기로 결정을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주간한국> 이라는 신문에 대한 설명이 꼭 필요 하다. 요새처럼 책으로 만들어 진 주간잡지가 아니라, 타블로이드 32쪽으로 된 신문이었다. 종합 주간 신문이다.

1964년 9월 27일. 이날은 우리나라 언론사상 분명히 기억이 될 날이다. 오랫동안 준비를 마친 주간한국이 창간 된 것이다.

32쪽으로 매주 토요일에 판매가 되는데 어찌나 인기가 있었는지 글을 쓰기가 겁 날 정도 였다. 일간신문을 포함해서 우리나라 전체 정기 간행물 가운데 가장 많은 부수가 팔려 나갔다.

주간국장 김용장, 주간부장 김성우, 그리고 이명원, 조경희(훗날 정무장관 역임), 홍계표, 민기, 박용규, 최석노, 박갑천, 송정숙(훗날 보사부장관 역임), 서인태, 신동한, 류호석(사진), 송평성, 윤여덕, 정달영, 정범태(사진), 이건섭, 신현구, 이서지(그림), 백형인(사진), 허영환, 정홍택 등이 기자로 뛰었고, 오군자와 윤정례가 행정을 맡았다.

주간한국을 만드는 총지휘가 김성우 선배인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 등 각 분야를 다양하게 다루었고, 특히 연예기사에 많은 지면을 주었다. 나는 카메라를 하나 어깨에 메고 시내를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아침에 회의를 마치면, 맨 처음 들리는 곳이 세종로 네거리 동아일보사 5층에 있는 동아방송(DBS)이다. 라디오 프로그램 가운데 특이한 것을 취재하고, 아나운서, 성우, PD들 인터뷰도 하고, 그 다음으로 지금 프레스센터 자리에 있던 동양 라디오(RSB-지금은 없음)로 간다. 거기서도 이런 저런 취재를 하고,

다시 걸어서 퇴계로 입구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5층에 있는 동양 TV(TBC_TV)로 간다. 동양 TV는 전두환 정권 때 언론 통폐합으로 현재 KBS 2TV, 즉 채널 7이 되어 있다. 이 방송은 그 때 마침 개국을 준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나운서, 탤런트, 무용 탤런트, PD등을 새로 뽑기 시작 했다.

여기서 일이 끝나면, 걸어서 남산으로 올라간다. KBS-TV와 라디오, 그리고 국제방송이 거기 있고, 연예인들이 많이 모이는 산길 다방이 있기 때문에 취재할게 많다. 여기 일을 마치고는 택시를 타고 종로 2가에 있는 기독교 방송(CBS)으로 간다. 이 CBS는 지금 목동에 멋 있는 사옥을 가지고 있다.

종로 2가 일을 마치고 조금 걸어서 인사동 네거리에 있는 문화방송(MBC)으로 간다. 이곳에도 취재할 것이 많았다. 여기 일이 끝나고 내 집(한국일보)으로 돌아오면 대략 오후1시 쯤 된다. 위에 말한 그 코스를 오전에 다 돌지 못할 때에는 남은 곳을 오후에 다시 다닌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취재한 것을 어느 정도 메모하고는, 저녁 시간에 야간 업소에 가야 한다. 나이트 클럽, 극장식 대형 맥주홀 등을 다닌다. 방송국 이야기, 야간 업소 이야기 등은 정말 무궁무진하다. 앞으로 크게 기대 해도 좋을 듯 하다.

이렇게 마구마구 돌아 다니는 이유는, “연예 기자에게는 출입처가 따로 없다”는 것 때문이다. 청와대 출입기자, 국방부 출입기자 등 모두 출입처가 있고 기자실이 있지만 연예 기자에게는 그런 게 없다. 멋있을거라는 생각으로 연예기자 시작했지만, 어느 정도는 고행이었다.

지금도 맥주마시면서 김성우 선배한테, “형님이 나를 망쳤다”고 대들면, “한 분야에서 최고라는 소리를 듣게 해주었으면, 고맙다고 해야지!” 하면서 말문을 막는다. 김성우 선배와의 에피소드는 수 없이 많다. 아마도 이 글을 쓰는 동안 자주 등장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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