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욱 / 문학과지성사
2003년 4월 1일 영화배우 장국영이 홍콩의 한 호텔 24층에서 투신자살했다. 47세였다. “세상에는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날아다니다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쉬지. 평생 단 한 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야.” 그가 주연했던 영화 ‘아비정전’(1990)의 대사다.
<장국영이 죽었다고?> 는 김경욱(37)의 2004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을 표제로 한 단편소설집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그 누구와도 관계하지 않음으로써 나는 겨우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존재다. 아버지의 보증을 섰다가 신용불량자가 돼 이혼했고, PC방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시원에서 살아간다. 장국영이>
내가 세상과 관계하는 것은 PC방의 컴퓨터로 인터넷에 접속해 채팅할 때 뿐이다. 어느날 ‘이혼녀’라는 아이디와 채팅하던 나는 장국영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전해 듣고, 전처와 개봉관에서 ‘아비정전’을 보던 기억과 영화에 나오던 ‘발 없는 새’ 대사를 떠올리는데, ‘이혼녀’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그 영화를 봤다는 말을 듣는다.
며칠 후 나는 ‘발 없는 새’라는 아이디로부터 검은 양복과 마스크를 하고 ‘아비정전’을 보았던 그 극장으로 나오라는 이메일을 받는다. 그날 극장 앞에는 50여명의 같은 차림을 한 남녀가 모여들었고, 그들은 매표소 앞에 줄을 서는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는 하나둘 사라져버린다. 이른바 플래시몹이다.
내가 그 행위를 “그것은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활력이었다. 그 뜻밖의 활달한 기운은 세상의 어떤 의미에도 복무하지 않았으므로 나를 더욱 흥분시켰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땀에 젖어 축축해진 손가락을 마우스 위에 얹은 채 모니터를 집요하게 노려보고 있는 익명의 군중’. 나도, ‘이혼녀’도, ‘발 없는 새’도, 플래시몹의 남녀들도, 김경욱이 묘사하고 있는 익명들이다. 현실보다는 영화나 인터넷이라는 가상에, 의미보다는 무의미에, 관계하기보다는 접속에 기댐으로써 겨우 존재할 수 있는 ‘장국영 세대’ 혹은 우리 시대의 초상 같은 소설이다.
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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