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상생의 기폭제일까 아니면 금융의 산업 예속화일까.
새 정부의 금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소유제한) 완화 작업에 시동이 걸렸다.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던 금산분리 관련규제를 3차례에 걸쳐 없애 버리고, 보험ㆍ증권지주회사가 제조업체까지 거느릴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자본성격의 테두리를 없애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외국자본의 텃밭이 되어버린 국내 금융시장에 ‘자주성’을 높이고 외국자본에 맞설 국내 대항마도 키울 수 있게 됐지만, 국가경제의 혈맥인 금융이 산업자본 손에 넘어갈 수도 있다는 우려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 금산분리 완화, 3단계 플랜
1단계 금산분리 완화 방안은 올 하반기부터 ▦국민연금 군인연금 같은 연기금과 ▦한국판 론스타 같은 사모펀드의 은행소유를 제한없이 허용한다는 것. 산업자본은 이 사모펀드를 통해 은행을 간접 소유할 수 있다.
2단계는 산업자본이 사모펀드를 경유하지 않고, 은행 지분을 10%(현행 소유한도는 4%)까지 직접 소유토록 하는 것. 현재 주요 은행 지분 구조상 10%면 충분히 1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다. 3단계는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소유 제한이 완전히 풀리게 된다. 2ㆍ3단계가 언제 시행될지 시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정부는 “3단계 시행에 맞춰 은행인수 적격성 심사 등 사후감독방안을 크게 강화해 개별 심사를 통해 자격이 없는 산업자본은 충분히 걸려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분제한의 족쇄가 풀리게 되면, 펀드 또는 산업자본은 외국자본에 대항할 ‘토종 대항마’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민영화될 산업은행이나 우리금융지주 만큼은 외환은행이나 제일은행의 전철을 밟지 않을 공산이 크다.
■ 보험ㆍ증권지주회사, 비금융계열사 소유가능
은행을 소유하지 않은 금융지주회사라면 제조업체ㆍ서비스업체 소유도 가능해진다. 예컨대 보험지주회사가 업무효율 차원에서 렌터카 업체 등을 설립해 자회사로 두는 식이다. 금융위는 “공정위와 협의해 일반지주회사도 금융계열사를 거느리도록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삼성그룹이 삼성생명이나 삼성증권 중심으로 금융지주회사를 만들어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 제조업 계열사를 거느리는 시나리오도 상정하고 있지만, 순환출자해소 비용이 워낙 커 실현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 금산분리 완화, 논란 지속될 듯
외국의 경우 미국, 호주, 이탈리아는 한국과 같은 금산분리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그 외 국가들은 금산분리 원칙을 명문화해 놓은 곳이 거의 없지만 이 원칙을 교과서처럼 여기면서 지키고 있다.
세계 100대 은행 중 산업자본이 1대주주로 있는 곳은 4개 뿐이다. 100대 은행에 투자한 292개 산업자본 중 88.9%가 한국의 금산분리 원칙에서 명시된 4% 미만의 은행 지분만을 갖고 있다. 금산분리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인지, 금산분리원칙을 지키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인지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은행권도 반대 입장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산업자본이 은행의 1대주주가 될 경우, 경쟁사와 협력업체 등의 재무정보와 금융정보 등을 은행을 통해 속속들이 입수하고 돈줄을 조여 압박하는 등 악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 수많은 중소기업 정보를 갖고 있는 기업은행이 재벌에 넘어갈 경우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며 “현재 4%제한도 충분히 높은데 10%로 완화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금산분리 완화와 동시에, 그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도출과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당국의 체계적 보완이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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