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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새롭지도 충격적이지도 않지만 '김현탁의 산불' 그 치열한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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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새롭지도 충격적이지도 않지만 '김현탁의 산불' 그 치열한 실험

입력
2008.03.3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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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이 '브랜드'가 되는 세대의 출현을 알리는 것인가. <김현탁의 산불> , 스스로 '소유격'을 붙이고 예술 생산품의 독자성과 유일성을 주장하는 의도는 어디를 향하는가. 지난달 30일까지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에서 공연된 이 작품은 차범석 원작을 해체했다기보다는 압축파일에 가깝다.

전쟁의 포연 속에서 불타 오르는 욕망의 드라마를 열 개의 에피소드로 시각화했다. 긴밀히 쌓아올린 사실주의 언어를 배우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팝음악의 현대적 리듬감에 섞어 '개념'에 가깝게 졸여 놓았다.

모텔의 주차장처럼 양쪽 등ㆍ퇴장구를 비닐막으로 가린 빈 무대 위엔 소화기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마치 '란제리 쇼'를 보는 듯 하늘한 속치마를 입은 여인들이 검객에게 희생돼 바닥에 구르는 해골을 감싸 안고 이리 저리 도망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인간사 욕망의 투쟁 그 종착역이란 남성은 광기요, 여성은 죽음일까. 남성의 욕망이 파시스트적 뒤틀림으로 표현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매튜 본의 남성무희들이 추는 <백조의 호수> 장면을 패러디한 사령관과 병사의 3인무, 하얀 목욕가운을 입고서 여인들의 욕망을 비웃듯 스티로폼 토끼를 앞세워 산책하는 김 노인이 있다. 손에 들린 삼색 풍선으로 표현한 '새파란 과부, 새까만 인생, 새빨간 거짓말'로 극의 컨셉트를 가시화했다.

한국연극의 실험은 오랫동안 전통의 수용과 재창조가 화두였다. 고전 텍스트의 해체와 전복, 언어의 시각적 번역도 빠질 수 없었다. 연극의 필수 요소들(객석과 무대의 분리)에 대한 공격적 질문도 거쳤다. 정치의식과 미학을 결부해 체제 자체에 대한 저항과 도발도 감행했다. 오늘날 실험연극은 지난 시대의 실험을 반복하는 행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만일 '충격'과 '새로움'이라는 실험극에 요구되는 낡은 상투어를 들이댄다면 <김현탁의 산불> 은 충격적이거나 새롭지는 않다. 작품 중반 이후 장면의 리듬과 시각적 전시방식은 헛돌 듯 반복되고, 희생되는 규복과 자살하는 사월, 절망하는 점례 등 파국 부분은 지나치게 축소되거나 회피했다.

에로스와 타나토노스의 배분에서 에로스적 욕망을 전시하는 데 치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욕망=속옷', '정액=달걀', '자유=날개', 비극적 종말을 팝송 '뷰티풀 선데이'의 반어적 절규로 마무리하는 등 기호 선택에서 직설법에 머문 것도 아쉽다.

그러나 실험극이 정통극을 표방하는 기성 연극보다 때로 더 윤리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은 아마도 매너리즘에서 달아나고자 하는, 만든 이의 치열한 자의식 때문일 것이다. 영원히 미완일 수밖에 없는 실험의 숙명과 패배감, 이를 인식하는 지성 때문일 것이다. <김현탁의 산불> 에 주목하는 이유다.

극작ㆍ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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