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 속 6년간 인질 생활 이후에도 콜롬비아의 ‘잔다르크’ 잉그리드 베탕쿠르(47)의 꿈은 다시 피어날 수 있을까.
30일 AFP AP 로이터 통신과 BBC 방송 등이 “프랑스 정부가 베탕쿠르를 이송할 비행기를 콜롬비아에 인접한 프랑스령 기아나에 대기해 놓았다”고 보도하면서 2002년 콜롬비아 대통령직에 도전했다가 극좌파 반군인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에 납치됐던 베탕쿠르의 석방이 임박했다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콜롬비아 장관을 지낸 아버지와 미스 콜롬비아 출신의 의원으로 활동한 어머니를 둔 명문가 출신 베탕쿠르는 콜롬비아와 프랑스를 오가며 성장했다. 어머니를 빼닮은 미모에다 어린시절 칠레 출신의 대문호 파블로 네루다와 시를 주고 받을 정도로 총명함을 갖춘 베탕쿠르는 프랑스 명문 정치학교 시앙포스를 졸업했다. 이후 프랑스 외교관과 결혼해 남매를 낳고 평범한 삶을 살았으나, 거대 마약조직과 극좌파 게릴라 등으로 고통 받는 조국 콜롬비아를 잊지 못해 1990년 귀국하면서 극적인 인생의 전환을 맞게 된다.
귀국의 대가로 이혼을 선택해야 했던 베탕쿠르는 공직생활을 거쳐 94년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에 접어든다. 그는 현직 대통령에게 마약조직과의 연관 의혹을 추궁하는 용기 있는 정치인으로 주목 받았다. 하지만 그로 인한 살해 협박 때문에 자녀들을 해외로 떠나보내야 했고, 자신도 2차례 암살 위기를 넘겼다.
98년 질식할 것 같은 정치판에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겠다며 ‘산소당’을 창당해 전국 최다득표로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그러나 그것이 영광의 마지막이었다. 2002년 대통령직에 도전했던 베탕쿠르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FARC 점령지역으로 선거유세에 나섰다 반군에 납치됐다.
FARC는 콜롬비아 정부에 베탕쿠르를 비롯한 ‘고위직 인질들’을 정부에 수감된 반군과 맞교환하자는 제안을 거듭했으나, 정부의 거부로 협상은 제자리를 맴돌았다. 이후 생사조차 알 수 없었던 베탕쿠르는 지난해 정부군의 FARC 조직원 체포과정에서 입수된 비디오를 통해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5년여 만에 공개된 비디오 속의 그의 모습은 심하게 여윈데다 과거의 생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비디오와 함께 발견된 편지에서 그는 “식욕도 없으며, 머리카락은 뭉텅 빠져나간다”고 호소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중재에 적극 나서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콜롬비아 정부에 협상을 강력히 촉구하면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말 그와 함께 납치됐던 부통령 후보 클라라 로하스가 우선 석방됐다.
베탕쿠르는 B형 간염과 열대 곤충이 원인인 피부병으로 위독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져 석방되더라도 그가 정치권으로 복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콜롬비아 반군 지역에서 활동하는 가톨릭 신부는 “베탕쿠르가 삶의 의지를 잃은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그의 전 남편은 “베탕쿠르가 이미 사망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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