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캠퍼스에서 18대 총선이 실종됐다.
대학생과 대학 총학생회가 등록금 인상 반대, 취업ㆍ중간고사 준비 등 눈 앞의 이해관계에만 매달려 총선을 외면하는 바람에 2002년부터 시행된 ‘부재자 투표소’ 설치가 처음으로 무산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3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전국 290여개 4년제 대학으로부터 ‘4.9 총선’ 부재자 투표소 설치를 위한 접수를 받은 결과, 단 한 곳도 설치 기준(부재자 투표 신고자 2,000명 이상)을 맞추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관위 관계자는 “2004년 총선 때 2,133명이 신청했던 서울대가 올해에는 783명에 머무는 등 1,000명 이상을 신고한 대학은 한 군데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부재자 투표를 신청한 소수 학생들을 위해 ‘예외규정’을 두지 않는 한 이번 총선에서는 어느 대학에도 부재자 투표소를 설치하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다른 선관위 관계자도 “부재자 투표소는 1990년대말부터 당시 대학생들이 ‘정치 참여 권리’를 보장하라고 강력히 요구, 2002년 대통령 선거 때부터 허용된 것”이라며 “불과 6년만에 해당 대학이 한 군데도 없다니, 세상 달라진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선관위에 따르면 2002년(지방선거)과 2004년(17대 총선)까지만 해도 부재자 투표소가 설치된 곳은 전국 12개 대학에 달했으나, 대학생들의 정치 무관심이 심화하면서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9개 대학으로 감소한데 이어, 지난해말 대선에서는 5개 대학으로 급감했다.
부재자 투표소 설치 대학이 한 곳도 없게 된 것은 대학생들의 정치 무관심을 단적으로 반영한다. 대학생들의 최대 관심사는 학점과 취업이고, 총학생회 역시 등록금 인상저지 투쟁 등 학내 이슈에만 몰두하는 바람에 총선 등 주요 정치 이슈는 찬밥신세다.
서울 소재 주요 대학의 경우 2004년 총선 때만 해도 이맘때면 총학생회나 각종 학생단체의 정치관련 홍보물과 현수막이 캠퍼스를 뒤덮었지만, 이번에는 ‘등록금 인상 반대’, ‘취업을 위한 영어 특강’, ‘동아리 회원 모집’ 등 이외의 홍보물은 찾기 어려울 정도다.
학생 자신들도 급격히 탈 정치화됐다는 점을 인정하는 눈치다. 김모(서울대 법학3년)씨는 “사범시험 공부 때문에 총선에 관심을 둘 수가 없다”고 했고, 이모(서울대 국문2년)씨는 “누가 국회의원이 누가 돼도 달라지는 게 없다. 선거 때 친구와 여행이나 다녀올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조을선(정외 4년) 부총학생회장은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에 역량을 집중하다 보니 여력이 없어 투표소 설치에 관심을 두지 못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2000년대 후반에 입학한 대학생의 정치 무관심에 대해 특히 우려하고 있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사회학과)는 “요즘 20대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두드러져 탈 정치화 경향이 강하다”며 “국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찾기 위해서라도 투표의 진정한 의미를 지속적으로 교육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관규 기자 qoo7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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