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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권오상의 사진-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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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권오상의 사진-조각

입력
2008.03.30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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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상(34)의 사진-조각은, 미술사에 전례가 없는 독특한 형식으로,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운 강렬함을 지녔다.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의 파노라마 사진 작업을 삼차원의 입체로 변환해 놓은 것처럼 뵈는 그의 작품은, 평면의 기록으로 입체를 도출해내는 묘한 논리를 갖췄다.

작가는 모델의 신체를 일일이 부분별로 (동일 광원 하에서) 촬영하고, 그렇게 촬영한 필름을 프린트해 이어 붙임으로써 (모델 없이) 조각적 결과를 낳는다. 인화지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조각상의 표면은 ‘포촘킨 파사드’처럼 기능한다. (본디 포촘킨 파사드란, 18세기 후반 그레고리 포촘킨이 예카테리나 대제의 눈을 속이기 위해 만들었던 가짜 건물들의 입면을 말한다. 이제는 통상 ‘허구적인 눈속임 건축’을 의미한다.)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작가는 “애초에 작업의 핵심은 ‘가벼운 조각’을 만드는 데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니까 그의 사진-조각은, 영락없는 사진 작업으로 보이긴 해도, 분명 조각예술 가문의 적손인 셈.

그의 입체 연작은 ‘데오도란트 타입’이라 불린다. 얼핏 들으면 사진 프린트 방식의 이름 같지만, 실은 한국 시장에 진출한 니베아의 데오도란트 광고를 보고 지어낸 이름이다. 겨드랑이에서 나는 암내를 은폐하는 데오도란트에서 차용한 이름은, 그의 작업이 은폐와 눈속임 효과에 관한 것임을 암시한다.

하지만 눈속임 효과로만 보면, 후속 연작인 ‘더 플랫’이 좀 더 경이롭다. 이는 잡지에 실린 소위 ‘명품’들의 사진을 오려서 종류별로 모아 작업실 바닥에 늘어놓고 사진을 찍은 결과다. 대형 프린트로 제시된 최종 이미지는 너무나 그럴듯하여 사람들의 물욕을 자극한다.

그러나 그의 작업 속에서 바글거리는 물신들은 모두 가짜다. 종이다리로 서있는 광고들도 있지만, 어떤 것은 철사로 서있다. 자세히 보면 철사의 끄트머리가 보이기도 한다. 이 판타즈마고릭한 작업엔 데이터베이스적 개념도 있다. 예를 들어 최근작인 ‘더 플랫 19’는 2000년 1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국내의 월간지 <럭져리> 에 광고된 손목시계들의 이미지로 재구성된 사진이다. 따라서 우리는 ‘더 플랫’을 ‘이 시대의 물질문화를 기록하고 기념하는 매우 독특한 방법’이라고 해석해도 좋겠다. 그런데, 이런 작업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어느 날 작가의 작업실에 놀러온 친구-작가 이형구-가, 잡지를 뒤적거리더니 느닷없이 이렇게 말했다: “이런 금딱지 시계를 차고 전시 오프닝에 나타나면 죽이겠는데...” 그 말을 들은 조각가는 곧바로 잡지에 게재된 ‘금딱지 시계’를 오려서 친구의 손목에 채워줬다. 그랬더니 꽤 그럴싸하더라는 것. 이 일이 발단이 되어, 본디 정물 사진작업을 해보려 마음먹고 있던 그는, 아예 광고에서 오려낸 시계들로 ‘정물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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