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장이 어린이 납치ㆍ유괴를 막기 위해 총력대응 체제를 가동하겠다고 약속한 시각, 일선 경찰이 초등학생 납치 미수 신고를 받고도 단순 폭행으로 묵살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30일 경찰에 따르면 26일 오후 경기 고양시 대화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초등학교 3학년 A(9)양이 방과 후 귀가하던 중 뒤쫓아 온 40대 남성에게 납치될 뻔했다 가까스로 풀려났다.
A양은 오후 3시44분께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 집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탔고, 아파트 단지 밖에서부터 쫓아온 40대 남성이 A양을 칼로 위협, 얼굴 등을 마구 때렸다. 이어 엘리베이터를 3층에서 세운 뒤 A양을 강제로 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A양은 입술과 다리 등에 상처를 입었다.
납치 위기에 빠진 A양은 1층 주민 B씨의 도움으로 구출됐다. B씨가 "살려달라"는 A양의 비명소리를 듣고 3층 복도로 달려가자, 괴한은 A양을 풀어준 뒤 4층으로 올라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도주했다. 이 과정은 이 아파트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 모두 녹화됐다.
A양의 아버지는 10분만에 경기 일산경찰서 대화지구대에 신고했다. 지구대에서 나온 경찰은 A양 부모를 만난 데 이어 CCTV 녹화 화면을 확인했지만 다음날인 27일 이를 '단순폭행' 사건으로 결론짓고 일산경찰서에 보고했다. 경찰은 납치 현장을 목격한 B씨를 만나지 않았고 CCTV에 또렷하게 잡힌 용의자에 대한 수배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CCTV에서 확인된 대담한 범행 수법으로 미뤄볼 때 용의자가 또 다른 아동 납치 범죄를 저질렀거나 저지를 수 있는 상태라는 게 범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같은 납치 미수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본서에 즉각 상황보고를 해 긴급인력을 투입, 피해자를 확보하고 주변 진술을 듣는 등 인질강도사건에 준하는 초동조치를 취하도록 돼 있다.
경찰의 무성의한 대응에 피해자 A양 부모와 주민들은 CCTV를 분석, 용의자 얼굴이 담긴 사진을 확대해 인근 아파트 단지에 배포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현장의 부하들이 늑장ㆍ축소 대응으로 일관한 이날 어청수 경찰청장은 "아동 납치ㆍ실종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 전국 경찰에 전담 인력 1,056명을 별도로 배치하는 한편, 이미 발생한 아동과 부녀자 실종사건도 전면 재수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편 경찰은 언론보도로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이날 일산경찰서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수사본부를 설치한다고 발표, 뒤늦게 호들갑을 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기경찰청 관계자는 "진상을 파악한 뒤 문제점이 드러나면 관련자를 문책하는 한편, 용의자 신병 확보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해명했다.
이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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