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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진화하는 진화론

입력
2008.03.28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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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존스 지음ㆍ김혜원 옮김 / 김영사 발행ㆍ648쪽ㆍ2만3,000원

에이즈는 현대 문명에 던져진 거대한 도전이다. 신에 의한 인간 창조를 믿는 창조론자들에게 에이즈란 불치병은 신의 분노를 증거하는 최후의 심판이다. 그렇게 믿는 사람이 미국에서만 1억 명이다. 인간에게 남은 것은 기도뿐인가?

그러나 에이즈 역시 과학적 과정의 산물이며, 인간의 인지력으로 해독될 수 있다고 책은 말한다. 에이즈 바이러스도 과학과 인간의 인식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즉 HIV는 고래가 변해 온 것과 같은 이치로 유전자에 의해 암호화된 유전계획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갖가지 도전을 극복하게끔 적응한 결과라는 것이다.

63 저자인 영국의 유전학 교수 스티브 존스(54)는 HIV와 고래는 다윈(Darwin)주의라는 위대한 드라마를 증명해 줄 좋은 예라고 주장한다. 1985년 배우 록 허드슨의 사망을 계기로 널리 알려진 에이즈의 비밀은 19세기의 저작 <종의 기원> 에서 이미 예견된 바다.

샌프란시스코의 동성애 환경이건, 감염된 원숭이 고기를 즐겨 먹던 19세기 아프리카 여행자들이건 에이즈는 <종의 기원> 에서 제시된 원리에 충실하다. 이유를 불문하고 자기 복제를 가장 빨리 하는, 이 경우 가축화되는 것이 훨씬 유리한 것으로 인식한 바이러스의 진화 코드가 그것이다. 자연 선택과 함께 진화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기제는 생물 다양성이다.

독립된 생태계인 섬에서 벌어지는 사례들은 다양성의 중요성을 선명히 보여준다. 육지로부터 외떨어진 군도는 그 자체로 별개의 소우주다. 섬에서 성공적으로 생존한 개체는 일단 외부에 노출되면 곧 멸종한다. 외부 생물이 없는 곳에서 적응한 하와이의 날지 못하는 거위의 전망이 어두운 것은 그래서다. 반면 지중해의 경우는 다양성의 천국이다. 지중해에는 세계 모든 식물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2만 종류의 고등 식물이 생물학적 다양성을 웅변하고 있다.

한편 가축의 경우, 변이는 유전자 변이와 함께 주인의 욕구에 따라 일어난다. 개를 보자. 개의 많은 특성은 다 자란 동물보다 어린 새끼를 좋아하는 인간의 단순한 기호 때문에 생겼다. 특히 귀족 취급을 받는 개의 경우, 계통을 지키기 위해 근친 교배를 할 수밖에 없다. 애견 협회란 동물이 아니라 인간의 기호를 충족시킬 뿐이다.

같은 이치로, 책은 생물 다양성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를 말한다. 우수 품종이나 다수확을 위해 생물의 다양성이 침해된다면, 많은 유전자들이 소실됨은 물론 살아 남은 것들에 의해 심각한 자연 약탈이 벌어진다는 경고다.

시공을 초월하는 엄청난 분량의 생물학적 지식 덕에 이 책은 독특한 박물학 서적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킨다. 호주의 작고 사나운 주머니쥐의 경우, 잘 자라고 활발한 놈에게 번식의 기회를 주기 위해 아들 1마리를 제외한 딸들은 모두 죽인다.

그러나 두 번째 번식기 때는 아들을 모두 죽이는데, 자신이 막 출산한 건강한 암컷 자손보다 유전자를 후세에 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푸른박새 수컷의 머리에는 자외선을 감지하는 새들의 눈에 보이는 반점이 있는데, 그것은 뾰족하게 튀어나온 음경으로 자신의 우월성을 표시하는 곤충들과 마찬가지로 탁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전략이다.

흥미로운 과학적 데이터들로 가득 차 있는 책은 때로 독자들에게 충고한다. 책에 의하면 “신앙을 핑계로 진실을 부정하는 것은 과학과 종교, 양자의 품위를 떨어뜨릴 뿐”이다. 순종을 고집하는 애완 동물 애호가들을 향해서도 말을 건넨다. “각각의 종은 아무리 순종처럼 보여도, 유전자 변화와 주인의 욕구에 따라 항상 변하고 있다.” 모두가 최고의 동물을 소유하고 번식시키려는 욕망 때문에 무의식적인 선택 작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책을 감수한 진화심리학자 장대익 동덕여대 교수는 서문에서 책의 현실적 의미를 선명히 밝혔다. “과거 1만년 증 어느 때에 신이 현재의 모습을 한 인간을 창조했다는 창조론을 믿고 있는 미국인 1억명(1991년 미국의 한 여론 조사) 도 책이 교정해야 할 상대다. 현대속에 살아 있는 진정한 편협함이며 의기양양한 무지의 소유자들이 결국 이라크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이 책은 다윈에 대한 철저한 오마주의 산물이다. 본문 시작에 앞서 <종의 기원> 표지를 한 쪽 가득 복사해 놓는가 하면, 소제목까지 다윈의 것을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당대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에 기댔다는 사실은 가장 큰 미덕으로 다가온다. 말마따나 진화하는 진화론이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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