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포럼이라는 단체가 최근 <대안교과서 한국근ㆍ현대사> 를 출간했다. 집필자들이 “우리는 우리의 책이 한두 줄이나 몇 마디의 단어로 단편적으로 인용되며 규정되는 것을 사양하고 싶다”고 한 당부에 따라 ‘큰 줄기’를 보면서 아, 역사를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싶어 감탄했다. 대안교과서>
이 책이 그리는 근현대사의 모습을 개괄하면 한국은 조선왕조가 망하고 일제의 식민지가 되어 근대화의 기틀을 갖추었고, 5ㆍ16 쿠데타와 10월 유신을 통해 본격적인 근대화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것이다.
■ 포럼 측은 이러한 역사상이 “국가가 마땅히 그들의 국민에게 전달해야 할, 그래서 그 국민이 그 국가의 존재에 대해 자긍심을 느끼게 해야 할 역사”라고 주장한다. 어느 나라 역사고 읽다 보면 감격을 느낄 만큼 자랑스러운 부분도 있고, 울분에 치를 떨거나 쥐구멍을 찾고 싶은 부분도 있다.
한 인간의 모습이 다채롭듯이 역사도 대개 그렇다. 그러나 파시즘이나 공산주의 같은 전체주의 사관이 아닌 한, 역사를 자긍심의 대상으로 서술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충만한 역사학 이론은 금시초문이다. 조선왕조도 실록과 용비어천가는 구분했다.
■ 또 하나 신기한 것은 집필자들의 세계관이 21세기 현재 인류가 도달한 휴머니즘의 보편적 기준에서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근현대사의 사명이 근대화에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면서 근ㆍ현대화의 핵심 가치인 인권이나 민주주의에는 별 관심이 없다.
포럼 측도 인정한다는 헌법적 가치를 기준으로 말한다면 대한민국은 우선 ‘민주공화국이다’(헌법 제1조). 그리고 그 대한민국(국가)은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10조)해야 한다.
■ 식민지 시대는 일제가 대한민국과 그 구성원들의 천부적 권리를 근본적으로 박탈한 시대이고, 이승만 대통령은 말기로 가면서 민주공화국을 와해시켰고, 5ㆍ16은 헌법 자체를 거부했으며, 10월유신은 종신 집권을 위해 민주주의를 누더기로 만들었다. 거기서 보고 배워 12ㆍ12가 다시 헌정을 중단시킨 것도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좁은 의미라도 근대화(경제발전)가 되면 이민족이 기본권을 박탈해도 자긍심을 느끼고, 국내총생산(GDP)이 올라가면 인권과 민주주의가 무너져도 무방하다는 의식구조는 어떻게 이해할 방법이 안 떠오른다. 아무래도 우리 초중고교 헌법 교육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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