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치안이 안정됐던 이라크가 정부군과 강경 시아파 무장조직인 마흐디 민병대간 무력충돌로 다시 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번 충돌은 10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전이 밀집된 바스라를 차지하기 위한 시아파 내 친미 온건과 반미 강경파간 권력 투쟁의 성격이 짙다. 칼은 미국의 지원을 받은 집권 친미 시아파 세력이 먼저 뽑았지만, 상황은 집권세력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어 미국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28일 AP통신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바스라에서 시작된 정부군과 마흐디 민병대간 충돌은 수도 바그다드를 비롯해 쿠트 힐라 등 이라크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27일 바스라 남부 지역의 한 송유관 시설이 파괴된 데 이어 미국 대사관과 이라크 정부청사가 몰려있는 바그다드 특별경계지역인 그린존에도 민병대의 공격이 이어졌다. 급기야 미군이 이날 새벽 바스라를 폭격하며 개입에 나섰다. 알 자지라 방송은 이번 충돌로 130명 이상이 숨지고 수백명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양측간 충돌은 누리 알 말리키 총리가 25일 바스라에 3만여명의 정부군과 경찰을 투입, 민병대 소탕작전에 나서면서 점화됐다. 바스라는 이라크 원유 수출의 80%를 차지하는 유전지대이자 이라크 원유 수출의 핵심 항구다. 이 지역을 관할하던 영국군이 지난해 12월 철수한 뒤 시아파의 각 세력들이 분할 점령해왔는데, 반미 강경 시아파 지도자인 무크타다 알 사드르가 이끄는 마흐디 민병대가 70% 이상을 장악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 정부는 이번 작전의 명분으로 법 질서 확립을 내세우고 있지만, 알 사드르 세력의 근간을 뿌리뽑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라크 시아파 최대 라이벌인 집권정당 이슬람최고위원회와 알 사드르가 이끄는 사드르당이 바스라의 원유와 물류 지배권을 두고 수년동안 싸워왔다”며 보도했다.
최근에는 사드르당에서 분리된 파딜라당이 제3세력으로 등장하면서 권력 다툼이 더욱 복잡해졌다. 양측의 갈등은 그러나 지난해 10월 이슬람최고위원회의 압둘 아지즈 알 하킴 의장과 알 사드르가 휴전협정을 맺으면서 수면아래로 잠복했다. 덕분에 이라크 치안이 안정되고 미국의 여론도 호전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라크 남부지역에서 사드르당의 지지도가 급속히 확산돼 이대로라면 10월 지방선거에서 대패하고 남부지역 전체에 대한 통제권을 잃을 것을 우려한 집권세력이 휴전협정 파기를 무릅쓰고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보고 있다. 유전 지대를 반미 시아파 세력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미국의 이해와도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말리키 총리는 27일 “결코 타협이나 후퇴는 없으며 이번 전쟁을 끝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바스라 소탕작전 3일이 지나도록 마흐디 민병대가 바스라를 여전히 장악하고 있으며 다른 남부 지방도 민병대 세력에 넘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말리키 총리는 29일 자정까지로 정했던 최후 통첩기한을 다음달 8일로 연장하며 “투항하는 무장대원에게 현금을 지급하겠다”며 당근까지 제시했다. 아직까지는 마흐디 민병대의 저항이 거세 이라크 정부와 미국의 노림수가 먹혀들지 불확실하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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