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 사이 봄비가 내리더니 나뭇가지마다 새 순이 움트고 있다. 머리를 내미는 새싹의 힘에 밀려 굳은 땅이 곳곳에서 갈라지고 있다. 지천으로 돋아나는 잡초 앞에서, 백 년 천 년을 사는 나무 앞에서, 인간은 유한(有限)한 존재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를 넘어 영원히 지속되는 그 무엇도 있다. 사랑이나 소망은 영원히 꽃피고 열매 맺는 생명체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지난 26일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신축건물 완공 기념식에서 나는 그 꽃과 열매를 보았다.
사랑과 소망의 영원한 힘
한국 최초의 법률구조기관인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1956년 문을 열었다. 한국 최초의 사법고시 여성 합격자인 이태영씨는 당시 이승만 정부가 '야당 의원(정일형 박사)의 아내' 라는 이유로 판사 임용을 기피하자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무료 법률상담을 시작했다.
남존여비 문화 속에서 남편의 외도와 학대 등으로 고통 받는 여성들에게 법적인 도움을 주고자 했던 그는 법률구조라는 생소한 영역을 개척하면서 "법은 인권을 지켜주는 든든한 친구"라는 인식을 국민 생활 속에 심었다.
이태영 변호사는 자원봉사자들을 불러모으는 데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가난한 상담자들을 위해 무료변호도 했는데 일이 늘어나자 100인 변호사단을 만들었다. 선후배 변호사들은 그의 뜨거운 설득에 기꺼이 손을 잡았다. 그는 기부를 끌어내는 데도 천재였다. 1976년 여의도에 '여성 100인 회관'이 완공됐다. 여성 100인의 기부금으로, 여성 건축사 지순씨의 설계로 지은 상담소 건물이었다.
가정법률상담소는 가족법에서 부부차별과 남녀차별적 요소를 폐지하기 위해 50여 년 동안 가족법 개정에 앞장섰고,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생활법률강좌, 행복한 결혼 아카데미, 부부갈등 해결을 위한 워크숍, 한 부모 가정 교육, 재혼가정 교육, 이혼 전후 교육, 좋은 아버지 교육, 노인학교, 가정폭력 전문상담원 교육, 은퇴자 교육 등 많은 프로그램을 마련했고 수강자들은 대부분 상담소의 열렬한 후원자들이 되었다.
상담소의 전화를 받아주고, 상담하러 온 사람들을 안내하고, 설움이 북받쳐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달래주는 자원봉사자의 대부분은 수강자들이다.
아름다운 기부자 방음전
상담소가 첫 건물을 30년 만에 헐고 새로 지은 집의 건축기금 기부자 중에는 방음전이라는 이름이 있다. 6ㆍ25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혼자 5남매를 키워낸 그는 상담소의 어머니학교 교육을 받은 후 현관안내 봉사를 하다가 1986년 76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어머니 학교 교육에 따라 미리 써둔 유언장에는 "나의 패물들은 상담소에 기증한다"는 구절이 있었다.
그의 자녀들은 각기 어머니의 패물을 나눠가진 후 500만 원을 모아 상담소에 기부했고,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후 상담소 신축 소식을 듣고 다시 1,000만 원을 모아서 어머니의 이름으로 기부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고통 받는 여성들을 위한 법률상담이 지난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가졌었는지를 뒤돌아보게 한다. 1998년 세상을 떠난 이태영 선생님은 "권력이나 돈으로 하는 일은 영원할 수 없으나 사랑으로 하는 일은 영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대 여성들의 사랑과 기도가 함께했던 가정법률상담소의 오늘은 '사랑의 힘'을 증언하고 있다. 1956년부터 2006년까지 50년 동안 상담소는 82만8,849건을 상담했고, 지난 1월의 상담건수는 서울 본부와 전국 31개 지부에서 1만 건이 넘는다.
정희성 시인은 50주년 축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법에서 꽃이 필 수 있을까 …반세기 전 척박한 땅 어두운 곳에 한 알의 겨자씨가 떨어져 그 중 슬픈 눈물 곁에 꽃 송이 피우더니 …아아 슬기로운 우리나라 여자들이 마침내 되는 것을 눈 비비며 보겠네…>법에서>
장명수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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