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진ㆍ중견 작가 4명의 산문집이 나란히 출간됐다. 천양희(66) 시인의 <그래도 사랑이다> (생각의나무 발행)와 소설가 이외수(62)씨의 <하악하악> (해냄)과 함께, 원재훈(47) 시인과 소설가 공지영(45)씨가 각각 <착한 책> (바다출판사),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오픈하우스)를 펴냈다. 제각기 독특한 형식과 문체로 내밀한 경험과 사유를 핍진히 드러내고 있는, 4인4색의 읽을거리다. 네가> 착한> 하악하악> 그래도>
■ 뜨거운 원색(原色) 사유
천양희 시인의 책은 등단 40년째 되던 해 펴낸 <직소포에 들다> (2004)와 <시의 숲을 거닐다> (2006)에 이은 세 번째 산문집이다. 36편의 에세이와 '마음을 적시는 짧은 이야기'로 명명된 4편의 장편(掌篇)이 수록됐다. 시인의 산문은 압축적 표현, 추상적 주제를 담고 있어 시처럼 세심히 읽어야 한다. 바꿔 말해 조금씩 아껴 읽어야 제격인 책이다. 시의> 직소포에>
35년째 독신을 고수하며 문학에 정진하고 있는 시인의 주요 화제는 사랑과 시. 책엔 사랑의 아포리즘이 가득하다. 사랑은 "기침처럼 참을 수 없고" "침묵으로 절정에 이른다". 사랑에 대한 진지한 사유는 마음, 나아가 인생의 깨달음으로 확장된다. 한편 시인은 시 쓰기를 "시간에 맞서는 정신의 긴 투쟁"으로 정의하면서 에스프리(정신)가 바로 문학의 본질이라 단언한다. 삶과 문학을 향한 시인의 탐구가 관능적이리만치 뜨겁다. 서양화가 김일화씨가 화려한 색감의 삽화를 보탰다.
■ 딸에게 보내는 편지
2006년 무가지 <에이엠세븐> 에 연재한 글을 묶은 공지영씨 산문집은 25편의 편지글로 이뤄졌다. 연재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맏딸 '위녕'이 수신자다. 편지엔 엄마로서, "스물일곱 살이나 차이가 나"는 인생 선배로서 딸에게 건네는 조언이 담겼다. 각각의 글은 완결된 서평으로도 읽힌다. 다독가답게 공씨는 인상 깊게 읽은 책에서 적절한 구절을 취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에이엠세븐>
공씨의 목소리는 '엄마'보단 '인생 선배'의 그것에 가깝다. 연애를 할 땐 "잘 헤어질 수 있는 남자"를 고르라고, 작가가 되고 싶거든 먼저 돈벌이부터 경험하라고 당부한다. '쿨한' 포즈를 버리고 인생의 상처를 기꺼이 받아들이라고 충고한다. 작가는 이 조언들이 몸소 겪은 바에서 길어올린 것임을 거듭 강조한다. 보듬는 대신 응원하는 모정이 진솔하다. 유명 화가인 조광호 신부가 삽화를 그렸다.
■ 유쾌한 촌철살인
이외수씨는 꼭 1년 전 홈페이지(www.playtalk.net/oisoo)를 개설하고 매일 10건 안팎의 짧은 글을 올렸다. 그 중 네티즌의 호응을 얻은 260건을 골라 실은 것이 이번 책이다. 자칭 꽃노털(꽃미남처럼 사랑받을 만한 노인)인 이씨는 흠좀무(흠, 그게 사실이라면 좀 무섭군요), 쩐다(대단하다) 등 인터넷 신조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젊은 감각을 과시한다.
서너 문장만으로 허위의식과 속물근성을 후려치는 솜씨가 노련하다. "태양으로는 결코 담배불을 붙일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태양의 결점은 아니다"라며 예술의 비효용성에 대한 시비를 일축하는 등 기발한 비유도 눈길을 끈다. 식상한 유머가 다소 많은 게 흠. 작년 이씨의 산문집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에 야생화를 그렸던 세밀화가 정태련씨가 이번 책엔 민물고기 그림 60여 점을 선보였다. 여자도>
■ 세 이야기의 몽타주
원재훈 시인은 작년 4월부터 10개월간 한 클래식 라디오 방송의 작가를 맡았다. 그때 방송 원고로 매일같이 쓴 원고지 1,500매 가량의 글을 추려 이번 책을 냈다.
책은 마흔다섯 꼭지의 글로 구성됐고, 각 글엔 세 가지 이야기가 담겨있다. 앞머리는 '교양 이야기'로, 시인의 방대한 독서량을 방증하듯 다양한 분야 및 출처의 정보가 동원된다. 이런 지식들이 엮여 삶의 소박한 지침을 제시한다.
가운뎃머리는 '픽션'이다. 소소한 일상을 소재로 한 짧은 소설로, 요란하지 않은 반전이나 여운을 주는 결말이 생각거리를 남긴다. 끝머리엔 잠언에 가까운 대여섯 문장이 놓인다. 세 이야기는 대개 공통의 소재로 느슨하게 연결되면서 독자에게 몽타주를 보는 듯한 독특한 느낌을 선사한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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