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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기획/ 한국의 소 '누렁이'의 봄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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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기획/ 한국의 소 '누렁이'의 봄타령

입력
2008.03.2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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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경남 함양 첩첩산골 중기마을에 사는 한국의 암소 ‘누렁이’ 입니다. 나이는 6살이 되었고요.

저는 요새 아주 바쁘답니다. 논도 갈아야 하고 밭도 갈아야 하기에 남들은 길다고 하는 하루가 후다닥 지나가 버리지요. 요즘 시대에 일하는 소가 어디에 있냐고요. 그저 고기 등급 잘 받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냐 하는 말씀인가 본데 , 대강은 맞는 말이나 우리동네에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저기 산 중간에 밭이 보이지요.

높이가 600m가 넘는 저곳에는 네다리 달린 나 같은 일소나 올라가지요. 물론 강아지도 올라가지만 걔는 올라가봐야 별 도움이 안되니까. 아, 내 정신 좀 봐.

얘기가 지리산 뱀사골로 빠지고 있네요. 하여튼 전 바빠요. 오늘은 견습 일소에게 ‘쟁기질의 기초’도 가르쳐야 하거든요. 비밀인데요, 일하는 소는 몸값이 한 30만원 정도 더 나간대요. 노동의 소중함이지요.

그런데 주인아저씨 표정이 영 좋지 않아요. 곡물 값이 폭등 하여 사료 가격이 몇 년 사이 배 이상 비싸졌대요. 그래서 송아지를 한번에 서너 마리씩 낳아야 밥값을 하게 된다니, 돼지도 아니고 … 하여튼 제가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일도 하고 새끼도 쌍둥이로 낳고 몸무게도 한 800kg 정도로 불리고 …그래야 미국 소 와 경쟁이 된답니다. 이러다가 울 때도 영어로 울어야 된다고 하면 어쩌지요. 음메~ 하고 울지 않고 무우~하고 울어야 하나 어쩌나…

경북 청도에 있는 내 남친 황소 아시죠. 힘과 끈기의 상징. 그가 새로운 직업을 가졌어요.

두 뿔을 곧추 세우고는 내 뼈가 센지 네 대가리가 더 단단한지 겨루는 좀 원시적인 경기에 나가는 프로 싸움 소. 멋지지 않냐고요? 물론 멋있지요. 한데 그것도 힘든 모양이에요.

시합 나가기 전부터 체력 훈련에 테크닉도 연마해야 되고, 그래서 아주 잘 먹어요. 사료를 먹는 우리와는 다르지요 . 힘을 엄청 써야 되니까 콩도 먹고, 뱀탕도 후루룩 마시고 하여튼 남정네들 몸에 좋다고 하는 것은 다 먹지요 . 그런데 은퇴하면 뭐 하냐고요. 고기 소가 됩니다. 우리들의 정해진 운명이지요.

우리 아저씨가 소 시장에 가면서 하는 말을 들었는데 사료에 붙는 세금을 좀 줄여주고 제가 아플 때도 싸게 고쳐주고, 소장수 맘대로 말고 아저씨 계산대로 값을 좀 받았으면 하더라고요. 아 참 한우고기 좋아하시지요. 광우병도 없고 위생적이니까 안심하고 많이 드세요. 비싸다고요? 그래도 우리들 음메소리가 우렁차게 계속될 수 있도록 사랑을 부탁드릴게요. 넋두리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음~메…

사진.글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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