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같은 슈팅과 신기의 드리블 만이 축구가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의 정수는 아니다. 때로는 경기력 외의 측면에서 극치의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 축구라는 스포츠다. 26일 상하이에서 펼쳐진 남북전이 좋은 예다.
15년 만의 월드컵 예선 남북전을 앞두고 양측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 문제로 국제축구연맹(FIFA) 중재 끝에 경기 장소가 평양에서 제3국인 중국 상하이로 변경됐고, 현장에 도착한 후에도 훈련 공개를 둘러싸고 이런 저런 신경전을 펴며 팽팽히 맞섰다.
킥오프 휘슬이 울리기 전에도 중국 공안과 군 병력들이 삼엄한 보안을 유지하는 등 그라운드 주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축구는 역시 축구일 뿐이었다. 킥오프 휘슬이 울리자 그라운드에 나선 22명의 남북 선수들은 정정당당히 맞서며 페어 플레이를 펼쳤다. 전반 초반부터 양팀 선수들은 온몸을 던져 강하게 맞부딪혔지만 상대 선수가 쓰러지면 공을 밖으로 차내고 신경전을 자제하는 등 깨끗한 플레이로 일관했다.
공 하나를 놓고 깨끗하게 승부를 겨루는 그라운드에는 60년 분단 세월동안 쌓인 갈등과 정치 논리가 끼어 들 틈이 없었다.
관중석에서는 2만여명에 달하는 남북 관중들이 질서정연한 응원전을 펼쳤다. 비록 적으로 맞부딪혔지만 A매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적대적인 구호와 듣기 거북한 야유를 던지는 관중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경기 장소를 평양에서 상하이로 옮기게 된 결정적인 원인인 태극기와 인공기가 게양되고 양국 국가가 연주될 때도 관중들은 서로에 대한 예의를 넘어서지 않았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최종 예선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눈 앞에 놓고 맞선 남과 북은 90분 내내 ‘페어 플레이’의 진수를 보여주며 아름다운 승부를 벌였다. 훙커우스타디움에서 펼친 남과 북의 선전은 축구가 보여줄 수 있는 경기 외적인 아름다움을 여실히 느끼게 해준 멋진 경기였다.
상하이(중국)=김정민 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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