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중 고등학생이 새 학년으로 올라가는 3월말이면 거의 모든 학교가 학부모를 초청하여 간담회를 갖는다. 학교를 가보면 우리나라의 학교 시설은 20년 전이나 별 차이가 없다.
난방은 난로에서 라디에이터로 확실히 바뀌었고 일부에는 급식실 같은 것이 새로 생겨났겠지만 빈틈없이 맞물리지 않는 유리창에 턱이 있는 교실문, 속칭 ‘도끼다시’로 불리는 연마자갈시멘트 바닥재가 어찌 보면 30년 전 학교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방학 중에 사단이 났는지는 몰라도 유리가 깨진 채 방치된 창문을 본 학부모도 있을 것이다. 설치한 지 오래 되어 갈 때가 됐다 싶은 사물함이나 책상을 보면서는 한숨이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 수십 년째 방치된 학교시설
화장실의 수준도 비참하다. 60년대까지만 해도 학교 화장실은 보편적인 가정 주택의 화장실보다 깔끔했다. 수십 년 동안 가정의 수준은 올라갔지만 학교 화장실은 더디게 발전을 했다.
아니, 수세식이 자리를 잡으면서 중요한 것은 설비 자체가 아니라 평소 관리인데 학교 경비 절감 차원에서 청소부를 둘 수 없다 보니 학생들이 쓰는 화장실은 눈 질끈 감고 드나들어야 하는 역겨운 장소가 되었다.
4층이나 5층인 학교 건물에 경사로를 설치한 학교도 매우 드물다. 학생들이 계단에서 떠밀려서 추락사한 사건이 나면 계단이 위험 합네 어쩝네 하는 비판만 무성하다가 해결책은 전혀 실현되지 않는다. 공공시설에 장애인을 위한 설비는 필수적이라고 주창한 지 오래되었는데, 공공시설 가운데서도 가장 기초적인 학교시설에 경사로가 없다.
그리고는 해마다 졸업시즌이면 엄마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업어 등교시킨 장애 자녀의 미담이 사람들을 울리는데, 아, 정말 부탁인데, 이런 미담은 이제 그만 듣고 싶다. 제발 장애인 혼자서도 어렵지 않게 다닐 학교 시설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학교가 시멘트로만 되어있으니 또 시끄럽기 짝이 없다. 모든 소리가 반사가 되니 조금 떠들어도 몇 배로 울린다. 교사나 학생들은 의사소통을 하려면 계속 목청을 높여야 하고, 시끄러운 상황에 계속 노출되니 집중력이 사라지고 인성이 거칠어진다.
그런데 이 모든 상황이 개선될 기미가 없다. 학교 시설은 지방 교육청의 예산지원을 받아야 개선이 되는데, 교육청은 이런 기본적인 시설을 개선할 예산을 지원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더구나 올해부터는 교육부가 영어 공교육 강화와 고교 다양화 사업을 위해 지방교육재정을 10%나 줄여달라고 했다니(한국일보 26일자 12면 보도) 더더욱 어려워질 모양이다.
새로운 시도를 위해 기본을 외면하는 것은 어느덧 한국 교육의 맹점이면서 전통이 되었다. 영어 공교육을 강화하고 싶다면 교사 문호만 개방하면 된다. 교사 질이 낮아서 학교 영어가 문제이지 다른 이유는 전혀 없다.
현재의 교사 임금으로도, 현재의 비용으로도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 고교 다양화 정책은 정확히 무얼 말하는지 몰라도 기본적인 것을 외면하고 이뤄진다면 엉뚱한 곳에 눈먼 돈을 부어주는 일이 되기 십상이다.
■ 공부방 아니라 기본시설 개선을
그 와중에 서울시에서는 2010년까지 992억원을 들여 시내 모든 고등학교에 공부방을 만들어주겠다고 한다. 일단 돈 많은 지방정부가 돈 없는 지방교육청을 지원하게 되는 속뜻은 신선하나 공부방이라니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생뚱맞다. 공부방의 기능이라면 현재의 교실로도 충분하다.
학교에 부족한 것은 전열비와 난방비와 관리인력을 고용할 돈이다. 학교 시설에 기여하고 싶다면 근본적인 건물 개보수를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돈을 꼭 생색내고 쓰고 싶더라도 서울시 돈이 아니라 서울 시민들이 낸 세금이라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란다.
돈을 빼앗아 가려는 중앙정부나 돈을 주려는 서울시나 모두 한나라당인데 머리를 맞대고 근본적으로 학교 시설을 개선하는 방안을 찾아볼 수는 없는 것일까.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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