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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이용대의 나는 오늘도 산에 오른다] <24·끝> 생과 사 넘나드는 '山드라마' 서 인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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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이용대의 나는 오늘도 산에 오른다] <24·끝> 생과 사 넘나드는 '山드라마' 서 인생을 배운다

입력
2008.03.2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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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구덩이에서 살아 돌아오다

죽음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투를 벌이며 몸부림 치는 산꾼들의 기적 같은 생환 실화는 우리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해준다.

이미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영국의 실화소설 <허공 만지기: touching the void> 의 주인공 조 심슨의 시울라 그란데에서의 생환기가 그랬고, ‘사람 잡아먹는 괴물’로 불리는 공포의산 오거에서 죽음의 탈출을 감행한 보닝턴과 스콧의 탈출기가 그랬다.

앞의 이야기는 정상에 오른 후 하산 길에 한 사람이 다리가 부러진 채 절벽에 매달리고, 다른 한 사람은 언제 미끄러져 떨어질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둘을 연결한 자일을 칼로 잘라 동료를 떨어트리고 각자 살기 식으로 베이스캠프로 돌아오는 내용이다. 반면 오거의 추락사건은 갈비뼈가 부러진 보닝턴과 양 다리가 부러진 스콧이 생명의 자일을 함께 묶은 채 서로를 이끌며 벌레처럼 지상으로 기어서 내려오는 지옥 같은 하산 과정의 이야기다.

<허공 만지기> 는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 라는 표제로 이미 번역서가 나온 지 오래 되었다. 소설 같은 이 실화는 영국에서 책이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했으며, 영화로 만들어져 영국최고의 영화상까지 수상했다. 국내에서도 개봉된 바 있어 알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책들은 전문 산꾼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한번 잡게 되면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야 그토록 화제가 된 이유를 알게 된다.

이렇듯 가슴을 찡하게 하는 소설 같은 생존실화는 외국 산꾼들에게서만 있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산꾼이 주인공이었던 일도 있다. 그가 바로 국내 정상급 거벽 등반가 박정헌이다.

그는 히말라야 3대 난벽(難壁)으로 정평이 나 있는 안나푸르나 남벽과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올랐고, K2에서는 70도 경사의 암벽지대에 ‘코리아 하이웨이’라는 새 길을 뚫고 무 산소로 정상에 섰다. 이런 고산 거벽등반은 목숨마저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부담이 크다. 3대 난벽 전부는 아니라도 이 중 두 개를 올랐으니 그를 ‘센 놈’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걸어서 오르는 산이 아니라 손과 발 모두를 써야 가능한 어려운 거벽들만 골라서 등반을 해왔다. 남들이 쉬운 길을 찾아 정상에 오르며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성과위주의 등반에 골몰하고 있을 때 그는 좀 더 어려운 벽을 찾아 오르는 자기만의 길을 걸어왔다.

2005년 1월. 촐라체 북벽에 매달린 박정헌과 그의 후배 최강식이 사흘 만에 정상을 밟고 하산하던 중에 최강식이 빙하의 크레바스 속 25m 아래로 빠진다. 이 순간부터 생사를 넘나드는 9일간의 사투가 막을 연다.

최강식은 크레바스 속으로 곤두박질치면서 두 발목이 부러진 채 자일에 매달렸고, 박정헌은 최강식의 추락 충격으로 끼고 있던 안경이 부서지고 갈비뼈 두 개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는다. “형. 살려 주세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두 사람을 연결하고 있는 것은 25m 길이의 자일뿐이다. 갈비뼈가 부러진 몸으로 자일 끝에 매달린 최강식의 몸무게를 견디며 더 떨어지지 않도록 버텨주는 것은 죽음과 같은 고통이었다. “자일을 끊어 버릴까...” 아주 짧은 순간 만감이 교차하면서 인간적인 갈등이 밀려왔다. 그러나 목숨을 잃는다 해도 후배를 빙하의 얼음 구덩이 속에 버려두고 갈 수는 없었다. 그는 사력을 다해 후배를 끌어 올렸다.

이들의 생환은 죽음 앞에서도 동료와 연결되어 있던 자일을 끝내 자르지 않은 휴먼 스토리이자 삶을 포기하지 않은 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분투기다. 이후 두 사람의 고난은 빙하계곡 탈출을 위한 죽음의 행진으로 이어진다.

최강식은 박정헌(시력 0.3)의 두 눈이 되고 박정헌은 최강식의 두 다리가 되어 5일 동안 굶으며 영하 20도의 추위와 싸우면서 죽음을 이겨내고 끝내 살아 돌아왔다. 조난 당한 지 9일만이다.

조난 3일 째 되던 날 박정헌이 구조요청을 위해 먼저 내려왔을 때, 최강식은 두 다리가 부러진 몸으로 5시간 동안 두 팔과 무릎으로 벌레처럼 빙하의 너덜지대(돌이 흩어져 덮인 지대)를 엉금엉금 기고 몸을 굴려서 야크를 키우는 움막까지 내려온다.

이 둘은 비싼 대가를 치르고 살아 돌아왔다. 박정헌은 동상으로 8개의 손가락과 2개의 발가락을 잘랐고, 최강식 역시 9개의 손가락과 발가락 대부분을 잘랐다.

<허공 만지기> 에서는 주인공이 동료를 버려둔 채 산에서 내려왔으나 박정헌은 죽음 앞에서도 동료와 연결된 자일을 끝내 자르지 않은 채 동료와 함께 살아서 돌아왔다.

박정헌의 생환기는 <끈> 이라는 제호로 출간된 바 있다. 이 책은 그가 병상에서 구술한 생환기다. 지금 박정헌을 테마로 한 산악소설 <촐라체> 가 소설가 박범신에 의해 출간되어 화제가 되고 있?

코오롱등산학교에서 박정헌이 맡은 해외등반 강의는 수강생들로부터 열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그가 강의 현장에서 토해내는 열강은 가슴 속에서 우러나는 실체적 진실이며 피와 땀으로 얼룩진 체험 속에서 우러나는 절규다. 그의 강의는 진실성이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암벽에서 잔뼈가 굵어진 산꾼이다. 그는 자일 파트너가 무엇인지를 아는 진정한 산꾼이다. 그들의 등반은 끝났지만 두 사람의 동행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인생은 살아가는 동안 크고 작은 숱한 산을 오르내리면서 성공과 실패를 경험 한다. 좌절과 희망. 완성과 미완성. 시작과 끝. 이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것이 산이며 그것이 곧 산의 의미라 생각한다.

항시 즐거움으로 가득한 산만이 독자들과 함께 하길 빌며 연재를 끝맺으려 한다. 그 동안 애독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특히 미주지역의 메릴랜드와 버지니아에서 매주 내 칼럼을 읽으며 고국의 산을 그리워하던 재미 산악인 김영대와 박성오 두 악우(岳友)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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