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전면전이나 다름 없다.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서로 작심한 듯 평소 통화 및 환율 정책에 대한 소신을 쏟아 냈다. 장소와 시간은 달랐지만, 서로를 겨냥한 발언이 확실해 보인다. 강 장관은 성장을 위해 환율 상승과 금리 인하에 무게를 실었고, 이 총재는 안정을 위해 정 반대의 입장에 섰다. 어느 정도 예상된 충돌이었지만, 생각보다 그 시기가 빨리 찾아왔다. 지금까지가 탐색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전투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물가잡기 정책으론 한계”금리인상 필요성 시사
포문을 먼저 연 쪽은 이성태 총재였다. 25일 오전 한국외국어대 총동문회 주최 기업인포럼 강연자로 나선 자리였다. 그의 외부 강연은 1년 반 만이다.
이 총재는 최근 환율 급등에 대해‘일시적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단기적으로 보면 환율은 천장을 한번 테스트한 것으로 보면 된다”며 “미국경제가 좋지 않으니까 장기적인 달러 전망은 계속 약세일 것”이라고 했다. 외환시장에서는 이 총재의 발언이 ‘환율이 단기적으로 고점을 찍었다’는 의미로 해석돼 환율 급락으로 이어졌다. 이날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20.9원이나 급락하며 970원대로 추락했다.
이 총재는 금리 정책에 대해서도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최근 인플레의 주범으로 꼽히는 국제 원자재가 상승에 대해 “원유나 농산물 가격이 흔히들 공급 충격이라고 얘기하고, 공급충격에서 오는 것은 정책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는 중국, 인도 등의 수요가 늘어난 요인이 있기 때문에 과거 공급파동처럼 급격히 가격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따라서 정책적으로 수용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는 강 장관이 최근 “현재의 물가상승은 원가요인이 강하기 때문에 총수요를 관리하는 통화정책으로는 억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밝힌 것에 대한 반박의 성격이 짙다. 정부의 물가를 잡기 위한 미시 정책에는 사실상 한계가 있으며, 통화정책을 동원(금리 인상)하는 게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 총재는 최근 국제금융상황에 대해서는 조심스레 낙관론을 폈다. 그는“(금융위기가)최악의 상황은 지난 것 같다”고 했다.“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지금까지 보다) 더한 대형사건이 터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라고 부연했다.
다만 “미 금융시장 불안이 금방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며 “얼마 전까지 올해 하반기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괜찮아질 것으로 전망했는데 그 시기가 더 늦춰질 수 있고, 올해까지는 ‘베어스턴스 사태’ 같은 사건이 가끔 하나씩 터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 "韓美금리차 과유불급" 금리인하 직접적 언급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 강도는 한 단계 더 높았다. 거의 직접적으로 금리 인하 필요성을 언급했다. 환율 상승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재차 강조했다.
강 장관은 이날 매일경제 이코노미스트클럽 초청강연에서 “한국과 미국의 정책금리차가 2.75%포인트까지 벌어졌는데 무슨 의미인지는 설명을 안 해도 다 알 것”이라며 “금리정책은 중앙은행 소관이지만 환율과 경상수지 적자 추이를 감안할 때 어느 길로 가야 할지도 자명하다”고 밝혔다.
특히 “뭐든지 과유불급(지나치면 미치지 못함과 같다)”이라며 한국은행의 신중함을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다. 직접 입에 담지만 않았을 뿐이지,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아주 노골적인 얘기였다.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환율에 대한 소신도 거듭 확인했다. 원화 절하를 용인하는 뉘앙스였다. 그는 “경상수지는 악화하는데 (원ㆍ달러) 환율은 절상되면서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를 맞았다”며 “현재도 경상수지는 악화하고 있는 상황인데 환율은 가장 높을 때와 낮을 때를 비교하면 45% 가량 절상됐다”고 설명했다.
강 장관은 국제금융국 이재국 등 국내외 분야에서 오랜 기간 공직생활을 했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그는 “대외균형과 대내균형이 상치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대외균형이라는 걸 몸으로 경험했다”며 “이는 견해가 아니라 팩트(사실)의 문제며 팩트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없다”고 역설했다.
발언 수위는 작심한 듯 갈수록 높아졌다. 강 장관은 “재정부 장관은 통화정책에 대해 금융통화위원회에 거부권을 가지고 있고, 환율에 대해서도 정책권한을 가지고 있다”며 “금융위원회는 금융산업, 거시와 통화금융정책은 기획재정부에서 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금융통화위원회에 ‘금융’이라는 단어를 잘못 붙여서 혼선이 있는 듯 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는 아울러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우리 경제의 평균 성장률이 4.9%인데 고정투자는 2.6%에 그쳤다”며 “성장보다 투자가 작은 것은 (나라가) 망해가는 것으로 획기적인 감세와 규제완화 정책이 없다면 우리 경제는 계속 하향 추세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물가를 성장에 우선하겠다고 말한 것처럼 보도돼 외환시장에 혼선이 있었는데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말해 성장 우선 정책을 강행할 것임을 강조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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