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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권력투쟁과 밥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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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권력투쟁과 밥그릇

입력
2008.03.2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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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투쟁은 실상 권력투쟁의 투영에 지나지 않는다. 보수니 진보니, 이념을 들이대지만 속내는 권력 장악이고, 이는 곧 ‘자리’를 석권하려는 것이다. 단순화하면 ‘이념투쟁 ≒ 권력투쟁 ≒ 자리싸움’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이때 노선, 코드, 명분, 색깔 등의 용어는 상대를 제압하는 기제(機制)로 작용한다.

얼마전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좌우를 편가르며 각계의 요직에 있는 전 정권 인사들에게 물러날 것을 종용한 것을 보면 이 등식이 제법 들어맞는다. 다양성을 수용해야 할 문화체육관광부의 유인촌 장관도 엇비슷한 발언을 했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인물들을 좌파로 몰아 찍어내려는 것이 요지고, 현 정권은 칼자루를 휘둘러서라도 전 정권 인사들을 도려낼 기세다. 덕분에 산하단체장 몇 명이 자리를 뜨는 성과를 올리긴 했다.

정당의 궁극적 목표가 정권 획득이고, 그 전리품(spoils)이 적어도 수백개에 이르는 ‘밥그릇’이니, 구 정권 인물들은 물러나는 것이 원칙이다. 이것이 엽관제(spoils system)의 관행이다. 하지만 엽관제의 폐해를 우려, 등용된 전문가의 임기를 보장하는 메리트시스템(merit system)이 지난해 4월 도입된 이상 명분이 약해졌다. 바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때문이다.

따라서 전 정권에서 적법 절차를 거쳐 임명됐다면 전문가인양 버텨도 몰아낼 방법이 없다. 집권 세력이 ‘정치적 도의’(정치권에서는 ‘상도의’라고 했다)를 외쳐도 밥그릇 문제다 보니 쉽게 결말을 볼 수 없다.

문제는 여기에서 ‘색깔론’이 슬그머니 등장했다는 점이다. 색깔론은 논리나 명분이 궁색할 때 똬리를 트는 속성이 있다. 권력투쟁의 와중에 상대방에게 ‘주홍글씨’를 덧씌워 몰아내는 것은 고전적인 권력장악 수법이다. 지원군도 등장한다. 이번에는 예총과 민예총이 그렇고, 빼앗으려는 측과 지키려는 측의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중국 등 우리 주변 정권도 경쟁 상대를 ‘노선’이 다르다는 이유로 숙청한 것이 다반사였고 ‘홍위병’도 있었다. 노무현 정권도 코드가 맞지않는 사람들을 솎아냈고 ‘노빠 부대’가 있었다. 노 정권은 좌파건 우파건 코드가 맞지 않으면 배제했다. 이쯤이면 ‘좌ㆍ우파’라기 보다는 ‘너ㆍ나파’였다. 미국도 매카시즘을 동원해 멀쩡한 인물들을 대거 희생시켰던 적이 있다.

원론적으로 좌파는 변화를 추구하고 자유보다는 평등을 중시한다. 우파는 변화보다는 안정을, 평등보다는 자유를 추구하는 입장을 취한다. 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이념논쟁은 원론에서 많이 비켜나 있다.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거나, ‘우측 깜빡이 켜고 좌회전’하는 인물과 정책이 뒤섞여 돌아갔다. 한승수 총리나 고건 전총리가 정권을 막론하고 요직을 섭렵한 것을 봐도 그렇다. ‘건전한 보수’니 ‘이성적 진보’ 운운하며 정책대결을 표방하다 선거가 다가오면 지역대결로 빠지는 악습이 있다. 건전한 이념논쟁이 아쉽다는 뜻이다.

‘정권의 나팔수’는 늘 있기 마련이고, 안 대표와 유 장관이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은 고전적인 공격법을 답습한 것이다. 전문직도 아닌 ‘정치직’ 인물들이 버티는 것도 볼썽사납지만, 어설픈 색깔론을 들이대는 것도 우리 정치문화의 척박한 수준을 드러낸다.

조재우 피플팀장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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