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예술도 이제 대중들의 삶 속에 머물러야 합니다.”
김지아나(사진) 조형예술가. 그는 LG전자 휘센 에어컨에 순수 예술가로서는 드물게 자신의 작품을 결합시킨 것에 대해 “대중을 떠난 예술은 그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며 이처럼 말했다. 디지털 가전제품과 순수 예술 작가가 만나 작품을 내놓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순수 예술은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것’이란 고정관념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야와 분리되기 보다는 산업이나 기타 다른 영역과의 교류를 활발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컨버전스(융ㆍ복합)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 흐름’이라는 말로 순수 예술과 산업분야와의 접목을 설명했다.
하지만 순수 예술가가 상업주의와 손을 잡는 것을 놓고 주변에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상업쪽으로 가면 순수 예술의 가치가 떨어진다’, ‘한번 순수 예술을 벗어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힘들다’ 등….
그도 이런 우려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처음엔 많이 망설였던 게 사실이에요. 학교에서나 동료들이나 너나 할 것 없이 반대 의견을 내놓았죠. 누군가 개척했던 분야가 아니라 처음 발을 들여 놓는 시도라는 점에서 걱정을 많이 해주셨죠.” 미국 몽클레어 주립대에서 순수미술 석사 과정(2002년)을 마친 그는 현재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 공예전공 박사과정을 밟으며 외부 강의를 나가고 있다.
이 같은 걱정을 뒤로한 채 그가 ‘미개척의 세계’에 뛰어든 것은 순수 예술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 때문.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어머님들이 맛있는 것을 보면 자식들에게 권하잖아요. 같은 마음이라고 할까요. 제가 상업 분야에 진출한 계기 역시 이런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예전과 달리 일반 대중의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순수 예술에 대한 저변이 확대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도 그가 순수 예술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날 수 있게 한 배경이기도 하다.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그는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했다. “순수 조형물을 출품할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예술은 작가의 느낌을 표현하지만 디자인은 고객 중심이잖아요.”
고민 끝에 그가 선보인 작품은 크리스탈을 이용해 ‘토네이도’를 연상시키는 모양을 휘센 에어컨 전면에 부착한 것이었다.
심혈을 기울였던 탓일까. 고객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LG전자가 현대백화점 목동점에서 그의 작품 등을 포함해 마련한 ‘아티스트전’은 호황을 이뤘다. 전시회 일정도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일주일 더 연장했다. 이 기간에 전시회를 찾은 고객만도 2만5,000여명. 덕분에 LG 휘센 에어컨 판매량도 행사 전인 전월에 비해 4배 가량 늘었다. LG전자측은 그와 세탁기와 냉장고 등을 포함해 새로운 작품 출시를 구상하고 있다.
“딸을 시집 보낸 어머님의 마음이라고 할까요? 그저 시집가서 잘 살기를 바랄 뿐입니다. 고객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말이죠.” 그는 또 다른 자식을 출가 시키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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