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새벽 어스름을 깨고, 농수산물유통공사 임직원 29명이 전남 해남군 황산면을 찾았다. 이들은 배추 1포기가 해남의 배추밭을 떠나 서울의 동네슈퍼에서 일반 소비자의 손에 넘어가기까지, 만 24시간의 경로를 추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600원짜리 해남 월동배추는 중간에 3단계를 거치면서 하루 만에 2,000원짜리가 돼버렸다. 3배 이상의 차이다.
해남 월동배추의 유통 경로를 처음부터 따라가보자. 해남 농가는 산지수집상(브로커)인 S영농조합과 이른바 '밭떼기' 거래로 3.3㎡(1평)당 6,000원에 배추를 넘겼다.
농가가 배추 1포기를 팔아 손에 쥔 돈은 608원. S영농조합은 인부를 사 배추를 수확한 뒤 포장해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까지 운반하는데, 포기 당 357원의 추가비용이 들였다. 여기에 오기까지 배추 1포기의 값이 965원으로 늘어난 것. 이 배추 값은 도매시장 경매를 거치면서 이보다 40% 가까이 뛰었다.
이날 낙찰가는 포기당 1,317원. D청과(가락동 중도매인)는 여기에 83원의 유통마진을 붙여 포기당 1,400원에 서울 각지의 소매점포에 넘겼다. 이튿날 아침, 서울 구로동의 동네슈퍼에선 전날 해남 산지를 떠난 배추가 1,600원에, 봉천동의 아파트 알뜰장터와 오금동의 슈퍼에서는 2,000원에 팔리고 있었다.
정부가 농산물의 유통 마진 줄이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생산과 소비가 직통해야 한다"며 유통구조 혁신을 통해 농수산물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의지를 비친데 이어, 농림수산식품부는 24일 '농식품 소비지-산지 상생협력 선포식'을 갖고 유통업체에 대해서도 농산물 직거래를 지원키로 했다.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유통고속도로'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 정부는 도시의 백화점과 대형마트, 외식업체, 식품기업들에 올해 농산물 직구매자금 250억원을 융자 지원하고 공동마케팅비용도 돕기로 했다. 농산물 생산자가 직거래 유통고속도로를 뚫기 어렵다면 거꾸로 유통업체가 나서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배추 무 등 농산물의 산지-소비지간 큰 가격 격차는 복잡한 유통구조 때문. 국내 농가들의 규모가 영세하다보니 도매시장이나 대형마트에 오기 전에 산지수집상이나 단위농협을 거칠 수밖에 없고, 3단계가 넘는 유통과정을 거치니 가격도 치솟고 있다.
정부의 구상은 산지 농가와 소비지 대형매장의 직거래를 터서, 산지 가격은 올리고 소비지 가격은 떨어뜨리겠다는 것이다. 직거래 사례가 없지는 않다. 안성 지역의 생산자 조직인 안성맞춤조합공동사업법인은 '안성맞춤'브랜드 저장배를 GS리테일 등 대형 유통업체와 직거래, 일반출하시보다 15㎏상자 당 4,500원씩 더 받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연매출 100억원 이상의 농산물 공동마케팅조직으로 선정돼, 정부 지원을 받는 곳은 전국에 22곳에 불과하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산물 생산자들을 조직화하고 규모를 키워서 교섭력을 키우는 게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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