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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종의 막전막후] 연기 넘어 영혼 서린듯한 임혜경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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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종의 막전막후] 연기 넘어 영혼 서린듯한 임혜경의 춤

입력
2008.03.24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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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로프 발레 예술감독 출신의 거장 올레그 비노그라도프가 유니버설발레단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에는 러시아 고전발레 소품을 갈라 형태로 소개하는 공연이 많았다. 필자도 열심히 그런 기회를 쫓아다녔는데 어느 날 한 무용수가 눈에 들어왔다. 유난히 큰 키(174㎝)와 서구적 마스크 때문이었다.

그가 임혜경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주역을 맡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9년 연말에 한 유선방송에서 유니버설발레단의 <라 바야데르> 를 방송한다는 걸 알고 TV 앞에 앉았다가 어느새 훌쩍 성장한 임혜경을 보게 되었다. 그때의 놀라움은 잊지 못할 것이다.

연인에게 배신당해 죽음을 맞이한 인도 무희의 슬픔을 놀라운 표현력으로 소화하는가 싶더니 ‘망령의 왕국’이라 불리는 유명한 피날레에서는 극도로 유장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어느 세계적 발레리나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연기였다.

아쉬웠던 점은 <라 바야데르> 로 각광을 받고 한창 물이 오를 시점에 미국 연수와 임신 등으로 상당한 공백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다시 돌아온 것은 2004년 봄의 <라 바야데르> 리바이벌 무대였다. 출산 4개월 만에 춤을 춘 것이었으니 몸에 여러 무리가 있었을 텐데도 지난날의 감동을 재현했다.

이듬해에는 처음으로 <지젤> 을 추었는데, 필자가 본 수많은 <지젤> 중에서 가장 실감나는 광란의 장면이 펼쳐졌고, 2막에서 연인 알브레히트와 생사를 넘어 추는 2인무에서는 눈물이 날 정도였다. 뛰어난 연기를 넘어 영적인 표현을 하는 발레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혜경은 많은 팬을 몰고 다니는 대중적 스타는 아니다. 파트너를 제한해야 할 정도로 키가 큰 데다가 대단한 테크니션은 아니기 때문에 아무 작품에서나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

사실 <돈키호테> 의 키트리, <잠자는 숲속의 미녀> 의 오로라 공주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라 바야데르> 와 <지젤> 만큼은 최고이고, 필자는 볼 기회가 없었지만 <백조의 호수> 에서도 대단하다고 한다.

현재 임혜경은 37세로, 발레리나로서 은퇴를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됐다. 그가 지닌 극적 표현력과 서구적 자태라면 안무가 존 크랑코나 케네스 맥밀란의 드라마 발레에서도 빛을 발했을 텐데 국내 무대에 머문 바람에 아예 기회조차 갖지 못한 것이 크게 아쉽다

. 5월로 예정되었던 <라 바야데르> 가 예술의전당 화재 탓에 내년으로 미뤄진 것도 팬들을 초조하게 만든다. 대신 공연된 <지젤> 을 22일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보았다. 가슴을 파고드는 표현력으로 승부하는 발레리나이기에 감동은 여전했다. 아무쪼록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임혜경의 춤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음악공동체 무지크바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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